듣지 못한 울음은 사라지지 않는다.그 울음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밖은 온통 회색빛이었고, 바람은 살을 에듯 차가웠다.
그날, 한 통의 제보 전화가 왔다.
“최PD님… 우리 아파트에서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죽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의 재혼 상대,
아이 곁에서 보호자가 되어야 했던 그 사람에게
지속적인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남편이 출근한 뒤 벌어진 일이었고,
119가 도착했을 때 아이는 이미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아이의 몸에는 오래전부터 반복된 폭력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팔, 다리, 배, 가슴,
그리고 둔기로 맞은 듯한 머리.
그 다음으로 학교를 찾았다.
그 교실에는 그 아이의 그림일기장이 남아 있었다.
새 친구들과 뛰어놀던 모습,
시골로 이사 와서 좋았다는 이야기,
친구들이 자신을 잘 대해준다는 글.
글씨는 또박또박했고,
그림은 환했고,
표정은 환했다.
그리고
간간이 이어져 있던 한 줄들.
“엄마가 보고 싶다.”
“새엄마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은 조용히 말했다.
“하루는 얼굴에 상처가 있어서 물었는데,
아이가 ‘집에서 엎어졌어요’라고 했어요.
그땐… 그 말을 그냥 믿었어요.”
그 말 뒤에,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우리는 그 아이가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울음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재혼 상대인 그 여자는 구속되었고
아이의 장례가 진행되었다.
나는 고민했다.
이 사건을 방송해야 하는가.
분노와 슬픔과 무력감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결국,
세상이 이 작은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이의 화장 날이었다.
KBS 로고가 붙은 취재차를 타고 화장터에 도착했다.
그때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최PD님… 친엄마가 지금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아이는 병으로 죽었다고 말했어요
방송차가 보이면 의심할 텐데…
혹시 물어보면 그냥 환경 취재 왔다고 말해주시면…
부탁드립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0여 미터 앞에서
한 여인이 온 존재를 흔드는 통곡을 하고 있었다.
그 울음은
몸이 아니라
영혼으로 우는 울음이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그 울음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흰 천으로 감싼 작은 유골 상자를 들고 차에 올랐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인간에 대해,
가족에 대해,
사랑과 책임에 대해,
그리고 보지 않으려는 본성에 대해
오래, 깊이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묻는다
우리는 왜
아이의 울음을 듣지 못했는가.
듣지 않은 것인가.
듣고도 모른 척한 것인가.
선생님이 조금만 더 물어보았다면,
이웃이 울음소리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다면,
아버지가 단 한 번만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면,
우리는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었다.
나는 그날
카메라를 든 사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무너졌다.
취재차 안에서
나는 울었다.
나도, 스태프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작은 생명 하나가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우리는
너무 늦게 울었다.
나는 지금도 마음속으로 아이에게 묻는다
“그날
너는 얼마나 무서웠니.”
그리고
그 아이는 대답 대신
조용히 이 질문만 남긴다.
“당신은 이제
다른 울음을 들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