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는 나이보다 태도에서 나온다
항암 치료가 끝나고, 이제 4개월이 지났다.
아내와 나는 오래간만에 집 밖으로 나섰다.
초겨울이지만 그날의 바람은 유난히 부드러웠다.
몸이 힘들어 먼 길을 갈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집 앞에 있는 뚝방길을 천천히 걸었다.
아내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치료의 흔적이 아직 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
걸음은 느렸고, 숨은 자주 가빠졌다.
하지만 아내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옆에서 한 발 반 뒤에 맞춰 걸었다.
우리는 그날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이 필요하지 않은 날들이 있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분한 날들이 있다.
바로 그날이 오늘이다.
들판 옆 작은 개울에서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졸졸졸….
참 깨끗한 소리였다.
나는 문득,
우리가 살아온 세월도 저 소리 같았구나 싶었다.
크게 요동치는 순간도,
소란한 때도 많았지만,
결국은 조용히 흐르며 서로를 살려온 시간.
나는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손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와 사랑의 온기가 있었다.
아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여기까지 왔네.”
나는 대답 대신 손을 조금 더 꼭 잡아주었다.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따뜻함이다.
서로의 약해진 부분을 알아보고,
그 약함을 탓하지 않고,
그저 함께 견뎌주는 일.
아내는 이제 예전처럼 빠르게 걷지 못한다.
나도 이제 예전처럼 멀리 가지 않는다.
우리는 속도를 맞추는 법을 배웠다.
기다리는 법도 배웠다.
때로는 “괜찮다” 한마디가
세상 모든 위로보다 깊다는 사실도.
사랑은 젊을 때보다
나이 들어 더 조용해지고, 더 단단해진다.
그날 뚝방을 천천히 걷던 우리처럼.
말없이,
멀리 가지 말고,
서로 곁에 오래 머무는 사랑.
그것이 우리가 배워온
함께 늙어간다는 것의 품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