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에서 독일로

작은 만남이 큰 꿈이 되다

by 최국만


아내는 지난 8월 말부터 읍내에 나간다.

서예도 아니고, 뜨개질도 아니고, 독서도 아니다.

1주일에 한 번, 프랑스 자수를 배우러 간다.


아프기 전부터 하던 취미가 아니라

처음 시작하는 일이다.


원래 아내는 친화력이 있다.

배품과 나눔이 몸에 밴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은 취미 모임은

아내에게 또 하나의 생의 활력을 건네준 것처럼 보인다.



우리 부부는 지금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다.

겨울이면 시골의 이 시간은 아직 밤이다.


아내는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암이 발병해

표적항암, 수술, 방사선 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아내는 늘 그 시간에 일어났다.


출근하는 나를 위해

새벽밥을 지어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여러 번 말렸다.

정말로 그만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프기 전과 똑같이

그 시간을 지켰다.


지난 1년 동안

아내는 항암치료 27번을 끝까지 마쳤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는 치료였다.


겉으로 보면

아내는 늘 괜찮아 보였다.

힘들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얼굴에 스쳤던 고통과

그 고통을 버티며 웃으려던 마음을.


그래서 나는

더 조심스럽게,

더 조용히 아내를 지켜봤다.


자수 강의에는

아내의 오랜 친구 한 명과

아내보다 열 살쯤 많은 언니가 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이 자수 모임을 계기로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고 했다.


강의가 끝난 뒤

세 사람은 따로 시간을 보낸다.

특별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앉아서

자기 인생을 이야기하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아픈 순간까지 가감 없이 꺼내놓는다.


그 시간들이

아내에게는

치료보다 더 큰 회복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즐거움은 특별한 데서 온다고.


좋은 장소,

맛있는 음식,

새로운 경험.


나 역시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아내를 보며 알게 됐다.

즐거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찾아온다는 걸.


아내는 그 시간을 통해

아팠던 기억을

조금씩 다른 감정으로 바꾸고 있었다.


8월에 시작한 강의는

11월 말에 끝났다.


그동안 나는

아내가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을 배웠는지,

강사는 어떤 사람인지,

누가 손이 빠르고

누가 천천히 배우는지까지.


어느 날 나는 말했다.


“내년 6월쯤

세 분이 독일에 한 달 살이 다녀오는 건 어때?”


아내는 잠시 말이 없더니

조용히 웃었다.


막내딸은

엄마가 독일에 온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기뻐했다.


아내의 암 발병 소식을 듣고

곧바로 독일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딸이다.

엄마의 아팠던 1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아이였다.


“아빠, 엄마가 이제 좀 회복돼서 온다니

너무 좋아요.”


딸은 말했다.


“독일에 있는 동안은

엄마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게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방도, 일정도, 여행도

자기가 다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그 어떤 위로보다 컸다.


이제는, 아내의 시간을 응원한다


아내는

내 직장 생활 32년 중

27년을 함께 일했다.


아이 셋을 서울에서 대학 보내며

새벽 출근과 밤늦은 퇴근을 반복했다.


나는

그 시간들이

아내의 병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미안하다.


그래서 지금은

아내가 하는 모든 일을

전부 응원하기로 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면

춤도 배우고,

괴산의 산들도 다시 오를 것이다.


작은 자수 모임 하나가

아내를 다시 밖으로 나오게 했고,

그 만남은

이제 유럽이라는 더 넓은 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그저 옆에서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인생은 어쩌면

이렇게 회복되는지도 모르겠다.

큰 결심이 아니라,

작은 만남과

한 땀의 용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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