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함께 있으면 충분했던 청춘의 여정.그날의 기차역 풍경
플랫폼에 소리가 울린다.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가 2번 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내가 타야 할 열차다.
아내의 떠밀림에 시작한 KBS 아나운서 시험,
그 숱한 경쟁률을 뚫고
드디어 합격을 했다.
그날 아침,면접을 보러 가기 전
아내는 내 얼굴에 조심스레 분을 발라주며 말했다.
“당신은 꼭 붙을 거야.”
그 말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었다.
아내의 눈엔 이상하게도 확신이 있었다.
그 믿음이 나를 당당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2주간의 연수를 받으러
구포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이곳까지 걸어왔다.
원서 접수부터 합격 통지까지
애가 타던 두 달
그 모든 순간마다
아내는 내 옆에 있었고,
나는 그녀의 숨결 속에서
희망을 품었다.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23세,그때 그 곱고 맑던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여보,연수 잘 다녀와요.정말 당신은 대단해요.”
나보다 더 기뻐하던 목소리,
그 말이 내 가슴을 울린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불빛처럼
우리의 젊은 날도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이 밤,이 열차는 단지 서울로 향하는 기차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타는,
우리 인생의 기차였고,
세상이라는 긴 레일 위를
두 손 맞잡고 달려가는
첫 출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