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보다 뜨겁던 삶을 지나,사랑의 깃발이 휘날리던 그 순간
삶이 축제라면,그날은 나를 위한 무대였다.
중국 화산(華山) 정상,하늘 가까이 닿은 그곳에서 나의 환갑은 펼쳐졌다.
그리고 그 축제 한가운데엔 언제나 아내가 있었다.
우리는 서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과거 당나라의 수도였던 그 도시는,역사와 문명이 겹겹이 켜켜이 쌓인 거대한 서사시 같았다.
진시황의 병마용,당 현종과 양귀비의 애틋한 사랑,
궁궐의 돌담과 찬란한 유물들.
모든 것이 거대했고,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정작 내 가슴을 가장 두드린 순간은 ,화산의 그 정점에서 찾아왔다.
화산은 중국 5대 명산 중 하나로 ,고대로부터‘하늘과 맞닿은 산’이라 불려왔다.
기암괴석이 하늘을 찌르고,
백색 석벽은 마치 세상의 이음선처럼 광활했다.
노송은 바람에 나부끼며 노년의 품격을 뽐내고,
절벽 위로 뻗은 협도는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듯 아찔하게 뻗어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또다시 20여 분을 걸어 화산 정상에 오르자
갑자기 아내가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현수막이었다.
“최국만PD 회갑을 축하합니다.”
나는 얼어 붙었다.
기획의 여왕다운 아내는 나 몰래 한국에서 현수막을 제작했고,
화산 정상에서 그것을 펼쳐 나의 환갑을 인생 최고의 축제로 만들어 주었다.
함께 여행 온 대학생 친구들이 현수막을 들고 박수를 쳤고,
주변 관광객들도 박수를 보냈다.
바람은 노송을 흔들며 춤추었고,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나는 얼마나 먼길을 걸어왔던가.
검정고시 교제를 사기 위해 나는 스무 곳의 공장을 전전했다.
쇳물이 펄펄 끓는 공장에 들어갔을 땐 ,땀이 아니라 생명 전체가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쇳물보다 더 뜨거운 나날.
무너질 듯 휘청이던 몸과,식지 않는 절망을 안고 나는 버텼다.
겨우 빠져나온 곳은 솜틀공장이었다.
사람의 따듯함을 만드는 솜조차도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나는 그 솜을 하루종일 어깨에 짊어지며 꿈을 간직했다.
솜도 무거웠다.
그러나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 무게를 견디고 책상 앞에 앉았다.
검정고시 책 한 권을 펼칠 수있는 자리가,내겐 살아 있는 증거였다.
그 치열하고 고단한 시간들이 ,지금 이 축제를 가능하게 했다.
나는 아내를 바라본다.
그녀와 함께 살아온 40년의 시간,
무대 뒤의 기획자이자 삶의 연출가였던 그녀는 오늘도 조용히 내 환갑의 무대를 완성해 주었다.
고맙다는 말로는 모자란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작아진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당신이 내게 준 이 하루를 ,
나는 평생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내 생의 마지막 무대에도,
나는 당신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화산에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지난 세월의 눈물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네게 속삭였다.
“이제,당신의 삶도 축제가 되어도 괞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