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나눔, 그저 ‘내 마음이 그대와 같음’을
그 아픔, 나는 알고 있다
기종이와 마주 앉아 퍼즐 게임을 한다.
창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세찬 바람까지 문을 두드린다.
참으로 을씨년스러운 날씨다.
방안엔 보일러 온기가 돌지만,
기종이는 여전히 가을부터 입던 얇은 점퍼를 고집한다.
자기 물건에 대한 집착일까,
아니면 그 옷이 기종이만의 정체성을 지키는 방식일까.
나와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이 옷만큼은 아직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 고집조차 기종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오늘은 공직에 있는 후배 동생이 오는 날이다.
그는 퇴직 후 오지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이발 봉사를 하겠다며 미용 기술을 배웠다.
작년부터는 출근 전 시간을 내어
이곳까지 기종이의 머리를 깎아주러 온다.
“형님, 저 왔어요. 기종아, 잘 지냈어?”
기종이는 반가움과 기쁨을 말 대신 웃음으로 표현한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기종이 머리를 깎으려면
연풍 읍내까지 나가야 했다.
수옥정 관광지에서 공공근로를 하는 기종이 어머니가
귀하게 번 돈 1만 5천 원을 들고 가야 했던 길이다.
후배는 괴산읍에서 이곳 연풍까지 왕복 70km를 달려온다.
출근 시간을 맞추려면 새벽부터 서둘러야 하는 거리다.
“기종아, 머리 많이 자랐네. 얼굴도 밝고 더 건강해 보여.”
후배는 기종이가 말을 못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이발기가 지나가고 가위가 세밀하게 움직이는 내내
기종이의 귀에는 따뜻한 안부가 쌓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엔 감사함이 차오른다.
누군가의 손길이 다른 이에게 미소를 준다는 사실.
세상이 제아무리 각박하다 해도,
이런 풍경이 있기에 아직은 살만한 곳이라 믿게 된다.
옆에 놓인 검은 봉지를 열어보니
빵과 김밥, 음료수가 들어있다.
“이게 다 뭐냐?” 물으니,
아예 점심까지 먹고 가려고 반차 휴가까지 내고 왔단다.
내가 새벽에 삶아온 계란과 후배가 사 온 김밥으로 셋이 마주 앉았다.
기종이는 한 사람이 더 늘어난 이 식탁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나 보다.
연신 우리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4년 전, 처음 만난 기종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늘진 얼굴, 수심 가득한 표정, 꽉 다문 입술.
어떤 반응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청년이었다.
부족한 나와 함께한 4년이 기종이의 마음에 조그만 등불이 된 것일까.
이제 녀석은 미소를 짓고,
내 어깨에 팔을 올리며,
흘러나오는 트로트에 발을 흔들 줄 안다.
후배는 내가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는 것을 알고,
자신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 그 먼 길을 달려온다.
나눔과 베풂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나의 삶을 기쁘게 하고,
나를 조금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점심을 먹고 이발 기구를 챙기는 후배를 보며 생각한다.
사랑도, 나눔도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이 그대와 같다’고 느끼는 그 지점에 있는 것이다.
“고맙다. 2개월 뒤에 보자.”
눈발은 여전히 휘날리고 있다.
멀어지는 차를 향해 기종이가 손을 흔든다.
말을 할 줄 알았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으리라.
“아저씨 고맙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기종이의 맑은 웃음 뒤로,
우리의 2월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