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닌 딸이 길을 준비한 날, 우리는 세월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세상은 여전히 불안하다.
뉴스에서는 미국의 이란 공격이 계속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자칫하면 중동 전체로 번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이어졌다.
우리는 원래 이집트로 가기로 했다.
아내의 환갑을 기념하는 여행이었다.
한 달 전 미리 항공권도 끊어 두었다.
하지만 세상이 우리의 계획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여행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집트 여행은 어렵겠습니다. 전액 환불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다행이야. 이 난리에 어떻게 그쪽을 가겠어.”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조금 허전했다.
환갑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한 번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환갑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며칠 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제가 엄마 환갑 여행 일정 짰어요. 남도 여행이에요.
남원하고 남해를 아우르는 여행인데 어때요?”
나는 잠시 말이 막혔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멋진 여행이다.”
아내도 옆에서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우리의 환갑 여행은
멀리 떠나는 해외가 아니라
우리 땅의 산과 바다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되었다.
토요일 아침, 우리는 괴산을 떠났다.
첫 목적지는 지리산 자락의 한 호텔이었다.
힐링과 휴식을 테마로 한 조용한 곳이었다.
괴산에서 약 230킬로미터.
주말이라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관광버스와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예전 같으면 이 모든 운전은 늘 내가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괴산을 출발한 지 40분쯤 되었을까.
하품이 나왔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죽암 휴게소에서 차를 세웠다.
“아빠, 이제 제가 운전할게요.”
딸이 자연스럽게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묘한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많았다.
이제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삶을 이어받는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아름다웠다.
함양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
멀리 지리산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산.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기도를 품어온 산.
‘딸이 왜 이곳을 선택했을까.’
나는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우리 부부가 걸어온 시간,
그 시간 속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라는 뜻일 것이다.
호텔로 올라가는 길.
길 양쪽으로 금강송 소나무가
도열하듯 서 있었다.
멀리 지리산 능선에는
아직 녹지 않은 잔설이 남아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주차장은 이미 전국에서 온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의 공기는 조용했다.
지리산의 바람소리,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문득 생각했다.
환갑이라는 나이는
늙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삶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시작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삶을 위해.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고
우리는 이 나이가 되었다.
지금은
내가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이 길을 찾고
아이들이 여행을 계획하고
아이들이 부모의 시간을 챙긴다.
이것이 바로
삶이 이어지는 방식일 것이다.
아내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1988년, 우리가 결혼했을 때
환갑이라는 나이는
아득히 먼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시간이
이렇게 조용히 우리 앞에 와 있었다.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된
아내의 환갑 여행.
3박 4일의 시간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온
서른여덟 해의 시간에 대한 작은 감사였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도
부모의 환갑을 맞이한 자녀가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지금 부부로 함께 늙어가는 길 위에 있을 것이다.
환갑이란
잔치를 크게 하는 날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시간을
조용히 돌아보는 날인지도 모른다.
지리산의 바람이
우리 부부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여보,
우리 참 오래 함께 걸어왔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렇게 조용히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