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속도를 버리고,사람의 온도를 택했다
나는 이제 촌놈이다.
그 말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따뜻함과 자부심을 느낀다.
촌놈이라 불리는 삶이,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단단하고 깊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오늘 그 이름을 기꺼이 내 어깨에 올려 놓는다.
어쩌다 한 번 ,촌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사람들이 웃는다.
어감이 거칠고,어쩐지 낮춰 부르는 말 같아서일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
도시놈이란 말엔 품격이 없고,촌놈이란 말엔 뿌리가 있다.
도시에선 속도만이 미덕이었다.
사람도 빠르게 걷고,말도 빠르게 하고,감정조차 잊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시골에 오니 느리게 걷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씨를 뿌리고,땅을 고르고,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이 모든 것이 천천히,그러나 깊이 내 삶에 스며들었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
밭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엔 땅을 깨우는 예의가 있다.
고추잎을 들추고,
옥수수에 물을 주고,
가지 사이에 핀 꽃을 살피며 하루를 시작한다.
해가 중천에 오르면 잠시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살짝 눈을 붙인다.
그리고 다시 나가 풀을 매고, 땀을 닦고,고랑 사이를 천천히 걷는다.
이런 삶이 반복되며
나는 자연의 시간을 따라 사느 법을 배웠다.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그 순리에 몸을 맡기는 것.
그곳이 바로 촌놈의 품격이다.
사람들은 촌놈이라는 말에 ‘촌스럽다’는 이미지를 덧씌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땅 위에서 가장 철학적인 존재는 바로 촌놈이라는 것을.
촌놈은 계절을 읽고,
땅의 숨소리를 듣고,
씨앗이 움트는 소리를 가슴으로 안다.
그들은 농업의 전문가이며,
마을의 지킴이이며,
전통의 계승자이며
인류의 밥상을 지켜주는 최후의 성자들이다.
나는 이제 도시인이 아니다.
나는 뿌리를 내렸다.
나는 이 땅의 냄새와 바람,
그리고 나를 닮은 고추 한 그루와 함께 살아가는 촌놈이다.
이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이 이름이 자랑스럽다.
촌놈이라는 말에는 속도보다 삶의 깊이를 택한 사람들의 철학이 숨겨져 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당당히 말한다.
“나는 촌놈입니다”
그 말은 ,
땅과 함께 숨 쉬고
땀과 함께 생각하며
느리고 단단하게 살아간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