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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울리는 시골의 전령

고요한 어둠 속에 울려 퍼지는 생명의 메시지,자연과 인간이 교차하는 밤

by 최국만

밤은 모든 소리를 삼키는 시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곳 시골의 밤은 오히려 생명이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어둠이 내려앉고,인간의 언어가 사라진 그때,

울음으로 세상을 깨우는 존재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시골의 전령’이라 부른다.

그 울음은 단지 짝을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지낸 생명의 순환과 질서에 대한 통보이자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철학적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시골의 밤은 고요하다.

낮 동안 풀벌레와 새들이 쉴새 없이 지저귀던 마당도,

저녁이면 숨을 고르듯 조용해진다.

별빛이 지붕 위에 내려앉고 ,바람조차 한 박자 쉬어가는 시간.

그런데 이 고요함을 깨우는 소리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개짓는 소리다.


도시 사람에게 개 짖는 소리는 불편하고 거친 소음일 수 있다.

하지만 시골에서 개짖는 소리는 단순한 경계음이 아니다.

그것은 마을의 숨소리요,누군가의 발걸음를 알리는 전령의 목소리이며,집집마다 켜두는 작은 등불 같은 것이다.


우리 집은 2층의 제법 큰 건물이지만 담벼락이 없다.

사실 우리 마을 대부분의 집이 그렇다.

옛날에는 도둑을 막기 위해 높은 담을 쌓기도 했지만 ,지금은 CCTV 가 설치되어 있다.

집 입구의 좁은 아스팔트 길에도 그 눈이 반짝이며 우리를 지켜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진정한 방범 시스탬은 차가운 카메라가 아니라,집 안에서 귀를 쫑긋 세운 개들이라는 것을 .


우리 집에는 뭉게와 별이가 있다.

뭉게는 11살 된 작은 믹스견이고,별이도 3살 된 믹스견이다.

둘 다 괴산 장날에 데리고 온 인연이다.

처음 데려왔을 때는 마냥 작고 귀여운 존재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은

집을 지키는 든든한 경비대가 되었다.


우리 집은 산과 맞닿아 있다.

사계절 내내 산에서 온 손님들이 마당을 스친다.

봄에는 고라니,여름에는너구리,가을에는 멧돼지,겨울에는 오소리와 들새들이 온다.

그럴 때마다 뭉게와 별이는 쉬지 않고 짖는다.

외부 손님이 대문 없는 마당을 밟을 때도 ,

그들은 제일 먼저 소리로 우리에게 알린다.


그 개 짖는 소리는 단순한 경고음이 아니라,살아 있는 존재의 울림이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소리를 ‘존재의 떨림’이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소리를 통해 우리 삶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개 짖는 소리 역시 그렇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움직임이,그들의 목소리를 타고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것은 밤의 세계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인간과 자연이 맺은 오래된 동맹의 신호다.


밤늦게 들려오는 그 소리에 잠이 깨기도 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덕분에 이곳이 살아 있는 마을임을 느낀다.

개들이 멀리서 짖으면 이웃집 개들도 따라 짖고,그 메아리는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온다.


마치 옛날 마을의 방울소리,북소리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의식 같다.

도시에서는 이웃집 개 짖는 소리가 불평과 민원으로 이어지지만,

시골에서는 그것이 또 하나의 인사다. ‘누가 왔어요‘

하고 알려주는 공동체의 소리,불빛이 꺼진 마을을 지키는 작은 북소리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소리는 단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고.

소리는 우리 마음속 공간을 채우고,어떤 소리는 불안을 지우며,어떤 소리는 그리움을 일으킨다.

시골의 개 짖는 소리는 그 두가지를 동시에 한다.

안심과 그리움,경계와 환영.


별빛과 개 짖는 소리가 뒤섞인 시골의 밤은 ,

그 소리마저도 평화롭다.

아마 내가 이곳에서 사는 동안,

그 정겨운 밤의 전령은 계속해서 우리 삶을 지켜줄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세상의 숨소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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