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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세의 교실, 나는 다시 배움을 시작했다

인생의 후반전에서 만난 새로운 배움과 사람들

by 최국만

2023년,코로나의 여파로 모든 교육기관은 대면 대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아내와 나는 그해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에 함께 등록했다.

먼 길을 나서지 않아도 집에서 받을 수 있다는 점은 편리했지만 ,화면 앞에 앉아

하루 8시간씩 강의를 듣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교육은 국가자격증 유무에 따라 달랐다.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32시간,없는 사람은 40시간을 이수해야 했다.

나는 후자였기에 다섯 날 동안 강의를 들어야 했다.

교재는 250쪽 분량,총 7개 파트로 나뉘어 있었다.

내용은 활동지원사의 의무와 역할,인권 존중,관계 형성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부는 이미 익숙했지만 ,또 많은 부분은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였다.

첫날부터 아내와 나란히 앉아 필기를 하며 강의에 집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내 안에서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불과 4-5일 교육과 10시간 실습만으로 ,과연 한 사람의 삶을 책임지는 자리에 설 수 있을까?”


실제로 교육과정은 기본적인 지식 전달 위주였다.

장애유형별 특성과 지원 방법이 소개되었지만,현장에서 마주하게 될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들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발달장애,뇌병변장애,지적장애,시청각장애 등

각각의 특성은 물론,개인차까지 고려하면 매뉴얼만으로는 절대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현장에

들어와서야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PD로 재직할 때 매년 4월20일이면 거의 장애인관련 다튜멘터리를 비롯해

장애인의 인권,복지,처우,교육 관련 취재를 많이 했다.

그런대도 교육을 받으며 많은 새로운 사실들에 짐짓 걱정이 앞서기도했다.


64세였던 나는 나이 때문에 망설였지만 ,놀랍게도 내 또래는 물론 70대까지

지원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열정을 보며 다시 용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날 강의를 마치고,자격증을 기다리던 순간에도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그저 짧은 교육을 끝냈다는 안도감과 함께,제도의 빈틈에 대한 깊은 우려가 남았다.


3년이 흐른 지금,나는 여전히 활동지원사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장애인과 마주하며 배운 것은 교재나 강의에서 다 담아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사람마다 다른 눈빛,손짓,침묵 속의 언어를 읽어내는 것은 오직 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돌봄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였고,

매뉴얼이 아니라 공감이었다.


그러나 이 길을 걸으며 더욱 확신하게 된 것도 있다.

현행 교육 제도와 현장 투입 방식은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기간의 이론 위주 교육과 최소한의 실습으로는 장애인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활동지원사는 단순한 ‘도우미‘가 아니라,일상과 존엄을 함께 지켜내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진정한 돌봄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가?”

그 답은 단순히 제도의 개선에만 있지 않다.

제도는 기반을 마련하지만,

그 위를 채우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64세의 교실에서 시작된 나의 배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매일 현장에서 다시 배우고,

더 깊이 공감하며,

나는 돌봄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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