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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직도 교회를 못 떠나는가

나는 여전히 매일 누군가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한다

by 최국만


나는 이제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10년 전쯤 조용히 발길을 끊었다.

믿음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지쳤고, 교회라는 제도에 마음이 다쳐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도만은 멈추지 못했다.


지금 나는 장애인활동지원사로

한 청년을 돌보고 있다.

이름은 기종이(가명)

말을 하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청년.


매일 아침 그 아이를 만나면

나는 그의 머리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는다.

“하나님, 오늘도 이 아이를 지켜주세요.”

그건 습관이 아니라,

신앙보다 더 깊은 내 안의 기도다.


나는 모태신앙인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부터 예배당의 공기를 들이마셨고, 젖을 떼기 전부터 교회의 장의자에 앉아 ‘아멘’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 시절, 교회는 나에게 세상의 전부였다.

하얀 셔츠를 입고 성가대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겠노라 순진하게 다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청년이 되고 세상으로 나아간 뒤에도 나는 줄곧 교회를 지켰다.

삶이 팍팍할수록, 현실이 거칠수록 나는 더욱 교회를 찾았다.

기도가 유일한 위안이었고, 찬송이 유일한 위로였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성가대에 섰고,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기쁨을 느꼈다.

우리는 교회에 새벽을 여는 부부였다.

새벽기도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 그 시간은 단지 신앙의 의무가 아닌, 하루를 여는 가장 따뜻한 시작이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하늘처럼 높고 맑았다.

기도 중에 흘리는 눈물은 세상의 고통을 씻어내는 것 같았고, 찬송 속에 깃든 믿음은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나는 교회의 또 다른 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교회라는 공동체의 깊은 속을 들여다볼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일부 목회자들의 돈에 대한 집착, 스스로 내세우는 빈껍데기 권위, 형식적인 언사와 삶의 불일치를 목격하며 나는 속으로 한탄했다.

“왜 내 주위엔 훌륭한 목사가 없었을까?”

그 질문은 한동안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점점 교회라는 공간에서 멀어졌다.

어느 날 조용히 발길을 끊고, 주일 아침이면 혼자 마당을 걷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나를 책망하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에게도 떠났노라 말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아주 조용히, 교회 바깥의 신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아직도 교회를 완전히 떠나지 못했다.

몸은 교회에 없지만, 마음 한 자락은 여전히 그 안을 서성이고 있다.

나는 지금도 새벽에 깨어, 조용히 기도한다.

주찬양을 올렸던 그 시간들처럼, 간절히 눈을 감고 이렇게 기도한다.

“예수를 통해 배운 그 사랑, 그 온전한 사랑이 다시 내 마음 안에 살아나길.”

그 사랑이 나를 평화롭게 하기를, 다시 믿음의 길 위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기를, 나는 오늘도 기도하며 그 날을 기다린다.


나는 신을 사랑하지만,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간의 행위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교회를 잊지 못한다.

그곳에는 내 유년의 기억이 있고,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도가 있으며, 젊은 날 아내와 함께 손을 맞잡고 찬송하던 순간들이 있다.

그 모든 시간이 내 신앙의 뿌리이자, 내 인생의 흔들림을 붙들어주던 토대였기에, 나는 아직도 그 자리를 쉽게 지우지 못한다.


신앙은 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요즘 나는 교회가 아닌 삶이라는 예배당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조용히 선하게 살고자 한다.

아내와 마당을 걸으며 나누는 말 한마디, 아이들과 웃으며 마주보는 저녁 식사,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형식이 된다.


나는 이제 묻는다.

“신은 정말 교회 안에만 계신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기에, 나는 아직도 교회를 떠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신은 내가 묻는 이 질문 속에, 내 망설임 속에, 내 고요한 침묵 속에 머무르고 계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떠났지만 완전히 떠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간다.

교회 밖에 있지만, 믿음 안에 있고, 제단에서 멀어졌지만 여전히 기도를 품고 있다.

그것이 내가 지금껏 배운 신앙의 방식이고,

나라는 사람의 어설프고도 진실한 방식이다.


나는 여전히 교회에는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아침,기종이의 머리에 손을 얹는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는 말이 없지만,

눈빛은 말보다 따뜻하고 깊다.

나는 그 눈빛 안에서

내가 잃어버렸던 신앙의 본질을 다시 만난다.


교회를 떠난 지 오래지만

나는 여전히 기도하고 있다.

어떤 신학도, 교리도, 제도도 아닌

한 사람을 향한 사랑과 축복의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조용히 기도한다.


“하나님,기종이를 지켜주세요.

이 아이의 하루가 고요하게 평화롭고,

이 아이의 마음에 아무도 보지 못하는 빛이 머물게 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이 아이 곁에서

끝까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나는 그렇게

오늘도, 신앙과 삶 사이에서

조용히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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