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고요를 존중하는 것이 ,은퇴 후 우리가 배운 사랑의 방식이다
은퇴 후의 부부는 대부분 이상한 동행을 시작한다.
늘 함께 있으면서도,
어쩐지 예전보다 말이 줄고,
서로의 침묵이 더 깊어진다.
젊은 날엔 각자의 일이 있었다.
나는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아내는 새벽부터 요양원 어르신들을 돌봤다.
우리는 늘 바빴지만 서로의 자리를 믿었다.
그 믿음이 곧 사랑이었다.
이제는 하루 종일 함께 있지만,
그게 꼭 편한 건 아니다.
같은 공간에 오래 머물다 보면
서로의 다름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말을 아끼게 되고, 침묵이 늘어난다.
아내는 종종 말했다.
“당신은 이제 말이 너무 없어졌어요.”
그럴 때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젠 말보다 눈빛이 더 편해요.”
그 웃음 속에는 묵묵히 견뎌온 세월이 있었다.
아내가 암 투병을 시작했을 때,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던 그 고요한 생활이
병원이라는 공간으로 옮겨갔다.
서울 병원을 오가는 긴 여정 속에서
나는 말이 더 적어졌다.
무엇을 위로로 삼아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아내의 손을 잡고,
그 손의 체온을 잃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투병의 시간은 두 사람을 하나로 묶기도 했고,
또 각자의 내면으로 깊이 밀어 넣기도 했다.
아내는 고통 속에서도 나를 걱정했고,
나는 그런 아내를 보며 삶의 강인함을 다시 배웠다.
요즘 우리의 하루는 조용하다.
아내는 뜨게질을 하고 책을 읽는다
나는 글을 쓴다.
서로 같은 방에서 다른 일을 하지만
그 고요한 공기가 묘하게 닮았다.
아내가 커피를 내리면 나는 잔을 내밀고,
짧은 눈빛 하나로 마음을 주고받는다.
괴산의 마을길을 함께 걸을 때면
아내는 풀꽃 향기를 맡으며 말한다.
“여보, 봄 냄새가 나네요.”
그 말 한마디가 오늘 하루를 견디게 한다.
이제 나는 안다.
사랑은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서로의 고요를 견디는 일이라는 걸.
함께 늙는다는 건
서로의 삶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존중하며 바라보는 일이라는 걸.
아내와 나는 둘이면서 동시에 각자다.
그리고 그 거리가
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온도이자,
지금도 서로를 살게 하는 힘이다.
사랑은 함께 견디는 고요,
그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숨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