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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홍수

“시간은 은퇴자에게 가장 큰 선물이자,가장 위험한 적이다”

by 최국만


갑자기 정년퇴직을 하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나 역시 그랬다.

현직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다가

32년의 시간을 한순간에 내려놓고 나니

갑자기 밀려드는 ‘남는 시간’이 두려웠다.


그동안은 시간이 늘 부족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12시간 같았다.

그런데 퇴직 후엔 하루가 48시간처럼 길어졌다.

해야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사라지고

시간만 끝없이 늘어졌다.

그것이 바로 ‘시간 홍수’였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본 퇴직자의 하루는 이랬다.

아침부터 텔레비전을 켜고,

점심이면 아내가 나가면 따라나서고,

심지어는 아내가 미용실에 머리하러 갈 때까지 따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퇴직 후 아내는 “이제 좀 쉬자”는 마음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남편이 집에 있으면 밥 세 끼를 차려야 하고,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

자신의 시간은 사라진다.

그래서 나온 말이 ‘졸혼’이고,

황혼이혼의 이유도 거기서 비롯된다.


나는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은퇴 초기에 그렇게 살았다.

일과 긴장으로 채워졌던 하루가 사라지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갑자기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아내를 보면서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아내는 암 투병 중에도,

자신의 시간을 지키며 살고 있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걷고, 웃고, 삶을 계획했다.

그 모습이 내게는 하나의 교훈이었다.


“아, 시간을 관리하는 건 체력이 아니라 마음이구나.”


나는 그때부터 내 시간을 다시 설계했다.

농사를 짓고, 글을 쓰고,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며 사람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하루를 버티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주는 일이야말로

‘남는 시간을 살아 있는 시간’으로 바꾸는 힘이라는 걸.


퇴직자들의 공통점은 ‘시험’이다.

요리학원, 악기 배우기, 중장비 면허, 여행…

하지만 그중 오래가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그것이 ‘의미 없는 소비’가 되면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채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의미로 메워야 할 그릇’이다.


나는 이제 하루를 ‘쪼개 쓰는 법’이 아니라,

‘깊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나의 기억을 되살리고,

돌봄의 시간은 나를 다시 사회와 잇는다.

그렇게 다시 ‘시간의 주인’이 되었다.


퇴직자는 모두 새로운 생을 산다.

직장을 떠났다고 해서

인생까지 퇴직하는 건 아니다.

남은 시간의 주인은 조직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생각한다.

“오늘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 물음이 내 하루를 살아 있게 만든다.


은퇴 이후의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짓는 삶의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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