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함께 쓰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다”
은퇴 후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돈이다.
퇴직금, 연금, 그리고 남은 저축.
평생 모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또 얼마나 아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노년에 돈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있는가?’
일반적으로 퇴직을 하면 자식들은 이미 결혼을 했다.
물론 늦게 결혼하거나 대학생 자녀가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손길이 더는 필요 없는 세대가 된다.
우리 부부를 비롯해 내 주변을 봐도 그렇다.
아이들은 자기 삶을 살고,
우리는 다시 둘이 남았다.
경제적으로 봐도, 자식들이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가는 시대다.
문제는 자식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 쪽에 있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생계가 절박한 이들도 있다.
그런 분들에겐 일은 생존이고, 노동은 존엄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충분히 먹고 살 만큼의 연금과 저축이 있음에도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다’는 이유로 다시 일을 시작한다.
나는 그 심정을 이해한다.
평생 일에 매달려 살았기에
일이 없으면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돈을 버는 사람’에서 ‘돈을 쓰는 사람’으로 바뀌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노년의 돈은 벌기보다 잘 쓰는 것이 더 큰 지혜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됐다면
이제 그 돈은 나를 살리고,
누군가를 돕는 데 쓰여야 한다.
돈은 결국 흐르는 것이다.
모아둘수록 불안해지고,
흘려보낼수록 삶이 넉넉해진다.
그 흐름 속에서 마음의 온도가 올라간다.
나도 처음엔 노년의 경제관념이 없었다.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랐다.
젊을 땐 가족을 위해 벌었고,
지금은 그 가족들이 다 떠났다.
이제 남은 돈은 내 삶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재료가 되어야 한다.
아내가 병을 앓으며 느꼈다.
돈이란 아플 때의 약값보다,
아프지 않은 날의 미소를 위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함께 커피를 마시고,
함께 여행을 떠나고,
좋은 식사 한 끼를 나누는 데 쓰는 돈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소비였다.
노년의 경제 철학은 단순하다.
버는 데서 행복을 찾지 말고,
쓰는 데서 의미를 찾아라.
돈은 인생의 안전망이 아니라,
사랑을 전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나는 이제 돈을 모으기보다,
사람과 추억을 모은다.
그것이 진짜 ‘노년의 자산’이다.
돈을 남기는 사람보다,
따뜻한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더 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