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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귀를 막은 세상

고통은 소리를 내지 않았고, 그의 침묵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었다

by 최국만



기종이는 그날 이후 말을 멈췄다.

입술은 닫혔고,

귀는 막혔고,

세상과의 연결은 절단되었다.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방에서 일체 나오지도 않았다

얼마나 그 당시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을까.


하지만

그가 멈춘 것은 단지 ‘말’이 아니었다.

그는 세상 전체를 닫아버렸다.


고통은 그날 그의 귀를 때렸고,

공포는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를 틀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왜 말을 멈췄는지,

너무 오랫동안 묻지 않았다.

그것도 무려 10년 가까이…


사람의 몸은 기억한다.

특히 공포는 신경계를 따라 끝까지 남는다.


기종이의 귀를 향해 날아든 주먹은

단순한 외상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모든 경로를 ‘위험’으로 기억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의료적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기종이가 건강검진을 받은 병원에 가서 알아봤다

청력에는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한다.


실제로 기종이는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알아듣고 있다.

3년째 내가 관찰한 기록이다.

당장의 발치는 수술전 치통약으로 임시 치료를 했다.

기종이의 침묵은 아직 끝나지 않은 통증이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외부의 급격한 충격으로 아예 입을 닫은 것일까

“알아 들으니 청각은 특별히 이상이 없어요”


그 말이 가슴을 때렸다.

“귀가 막힌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닫아버린 것이다.


기종이는 여전히

갑자기 큰 소리를 들으면 움찔하고,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면

눈동자를 피한다.


그리고 내가 부드럽게 “기종아” 하고 부르면

고개는 끄덕이지만,

입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기종이가 말보다

몸으로 세상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침묵이

얼마나 깊고 오래된 공포 위에 세워졌는지도 안다.


나는 이제 더 조심스러워졌다.

무엇을 물을 때도,

얼굴을 볼 때도,

손을 잡을 때도.


말을 멈춘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온몸으로 그의 마음을 ‘읽는 훈련’을 계속하는 일이다.


기종이는 아직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기종이가

어느 날 아주 작고 조용하게

다시 말을 꺼내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계속해서 더욱 세심하게 귀 기울일 것이다.

그의 손짓,

그의 시선,

그의 어깨 떨림,

그리고 그의 침묵 속 고요한 외침을.



다음 편 예고


5부. 기종이가 사는 마을


기종이는 왜 고등학교 이후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을까.

아무도, 그 침묵의 이유를 묻지 않았다

침묵의 산자락 아래, 한 사람의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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