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한 대, 손짓 한 번, 그리고 사라진 말
3부
기종이는 한때 말을 하던 아이였다.
서툴렀지만, 분명히 자신의 이름을 말했고
웃었고, 친구들과 어울렸고, 의사 표현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입은 열려 있지만,
그 속엔 말이 없다.
아무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그 ‘사라진 말’의 이유를 찾아
동네 어르신들의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날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마을 하천 정비 공사가 한창이던 시기였다고 한다.
좁은 농로길, 레미콘 차량이 들어오긴 턱없이 부족한 공간.
그날도 기종이는 동네에서 놀고 있었다.
기종이는 유난히 차를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큰 차만 보면 손을 흔들고 환하게 웃던 아이.
그리고 마침,
그 레미콘 차량이 골목으로 들어오려던 순간
기종이는 기뻐서 손을 흔들며,
“오라”는 제스처를 보냈다고 했다.
레미콘은 진입했다.
하지만 길은 너무 좁았고,
차는 결국 방향을 틀지 못한 채
하천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운전기사는 간신히 기어 올라왔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기종이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이다
“그날 많이 맞았어요.
하도 맞아서 애가 기가질려 있었어요“
“차를 좋아해서 손 흔든 것뿐인데…
애가 그 뒤로 방에만 틀어박혔지.”
“맞고 나서는 말도 안 하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어요,
사람을 보면 눈 피하더라고요.”
그 당시 어머니는
기종이가 감기라도 걸린 줄 알고
약국에서 감기약만 사왔다고 했다.
말은커녕,
제대로 아프다고도 못하던 기종이가
몸을 떨고, 잠만 자고, 밥도 거부했단다.
그 후,
기종이는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을 상상해본다.
차가 하천으로 떨어질 때의 소리,
그 거대한 물체를 향해 손을 흔들던 기종이의 얼굴,
그리고 곧바로 이어졌을
뺨 위의 폭력, 귀의 통증,
그리고 차단된 감정과 공포.
그 모든 순간이 기종이 뇌 속 어딘가에 새겨졌을 것이다.
“이 세상은 위험하다.
나는 침묵하는 편이 낫다.”
그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 문이 닫혔을 것이다.
나는 그저 활동지원사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말을 대신해야 할
기록자이자 증언자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슬픔이 아니다.
한 사람의 잃어버린 존엄에 대한 추적이고,
지금도 조용히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연대의 글이다.
기종이의 침묵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지만,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아이가 결국 말하지 못한 그 날의 “말”을 세상에 남기려 한다.
기종이의 말이 멈춘 날,
정말 멈춘 것은 ‘목소리’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그 입을 막아버린 ‘세상’이었을까?
다음 편 예고
4부. 귀를 막은 세상
트라우마는 몸이 기억하고, 고통은 말 없이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