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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기종이의 이야기를 쓰는가

고발이 아닌 기록으로,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by 최국만


왜 나는 기종이의 이야기를 쓰는가

고발이 아닌 기록으로,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나는 기종이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 아이가 말을 잃은 사연,

그로 인해 멈춰버린 시간,

그리고 그 곁을 지나는 사람들의 무심한 일상을.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왜 이런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가?”

“이제는 다 지난 일 아닌가?”

혹은 “이건 또 하나의 고발이 아닌가?”


그러나 아니다.

이 글은 고발을 위한 글이 아니다.

나는 이미 수많은 고발을 해온 사람이다.

30년 넘게 카메라를 들고,

사회 곳곳의 어둠과 약자의 고통을 드러내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세상의 부조리를

너무도 많이 보았다.

그리고 그만큼 인간의 상처와 무력함을

가슴 깊이 느꼈다.


이제 나는 고발자가 아니다.

기록자다.


나는 여전히 약자의 편에 서 있다.

하지만 이제는 소리를 높이기보다,

조용히 그들의 곁을 지켜보며,

잊히지 않게 기록하고 싶다.


기종이 이야기는 단지 한 사람의 불행이 아니다.

그는 이 사회의 구조 속에서

복지의 그늘 아래 놓인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다.

우리는 복지국가를 말하지만,

여전히 그 사각지대에는 기종이 같은 이들이 있다.


독일의 장애 비율은 9퍼센트 이른다.

우리나라는 고작 5퍼센트 불과하다.

그 수치 속에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이들의 고통이 숨어 있다.

‘복지국가’라는 말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이들의 삶이 함께 이야기되어야 한다.


나는 기종이를 통해 그 복지의 그림자를 본다.

누군가의 실수, 무관심, 방관 속에서

한 아이가 말을 잃고,

그 이후의 인생이 달라졌다.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 아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래서 나는 쓴다.

그를 다시 사회의 빛 아래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존재가 세상의 기억 속에 남도록 하기 위해서.


이제 나의 카메라는 펜으로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일을 한다.

타인의 아픔을 관찰하고,

그 곁을 조용히 지켜보며,

잊히지 않게 기록한다.


기종이 시리즈는 그 시작이다.

그는 한 개인이지만,

그의 이야기는 이 사회의 초상이다.

그를 통해 나는 우리 사회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성숙한 복지국가인가?”


나는 기록자다.

고발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기억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억은 세상을 바꾸진 못하지만,

세상을 잊지 않게 만든다.


기종이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다시 묻고 싶다.

“복지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이란 어디까지인가.”


이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그가 살아온 하루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만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기종이의 이야기를 쓴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이유이자,

지금 내가 여전히 펜을 드는 이유다.


이 글은 고발이 아니라, 기억이다.

나는 타인의 아픔을 다시 바라보는 사람,

그들의 이야기를 잊히지 않게 남기는 기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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