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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오기종 2024년의 기록

나는 배웠다.돌봄은 ’돕는 일’이 아니라 ‘믿는 일’이라는 것을

by 최국만


6부


“나는 오늘도 기종이를 통해 배운다.

돌봄은 가르침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것을.”


지난 2024년의 기종이는 놀라우리만큼 성장했다.

작은 행동 하나, 눈빛 하나에도 세상과 연결된 기운이 느껴진다.

이 기록은 1년 동안 내가 곁에서 바라본 변화의 여정이며,

그가 조금씩 세상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이야기다.


정서적으로 – 차분함 속의 이해


기종이는 한 해 동안 마음이 한층 더 고요해졌다.

낯선 소리나 상황에도 불안하지 않고, 눈빛과 표정에는 평화가 머문다.

내가 말을 걸면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맞추며 반응한다.

말을 이해하고, 감정을 받아들이며,

조용한 미소로 대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의 마음속에 ‘평화’라는 단어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학습적으로 – 생각의 구조가 자라나다


작년까지만 해도 퍼즐 10개를 맞추는 데 30분 이상 걸렸지만,

이제는 퍼즐 90개를 단 10분에 맞춘다.

무작정 맞추던 손끝이 이제는 색과 모양을 구분하고,

‘생각의 순서’를 찾아 움직인다.

내가 매일 말을 걸고, 함께 설명하고, 함께 웃었던 시간이

그의 인지력과 집중력을 길러준 것이다.

이건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기종이는 지금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독립적으로 – ‘스스로’의 기쁨


이제 기종이는 샤워를 혼자 하고, 칫솔질도 스스로 한다.

물을 맞추고, 양치 순서를 기억하며,

하루의 일과를 스스로 이어간다.

그의 손끝에 담긴 자립심은 나에게도 큰 감동이다.

나는 그에게 종종 말한다.

“기종아, 네가 할 수 있으면 선생님은 행복해.”

그 말에 그는 조용히 웃는다.

그 미소 속에는 ‘자존감’이 자란다.


치료적으로 – 꾸준함 속의 회복


2년 전부터 이어온 당뇨 관리와 고렬압 치료가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식사량 조절도, 혈당 점검도 안정적이다.

또한 지금도 당뇨 간이측정기로 1주일에 한번씩 측정하고 있다.

곧 있을 치아 발치도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

병원 진료 중에도 예전보다 훨씬 순응적이다.

그의 몸은 물론, 마음까지 단단해지고 있다.

치료는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배움의 과정이 되었다.


정신적으로 – 신뢰의 시간


올해 기종이는 폭력적이거나 난폭한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감정이 흔들릴 때에도 스스로를 다스리고,

불편한 상황에서는 잠시 자리를 피한다.

이건 단순히 ‘문제행동이 줄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이제 자신을 믿는 법, 타인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 신뢰의 밑바탕에는 오래된 대화와 따뜻한 기다림이 있다.

나를 보면 항상 웃고

심지어 내가 떠날 때는 문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교육적으로 – 말의 또 다른 문을 열다


이제 나는 기종이에게 수화를 가르치려 한다.

그가 언어를 이해하는 힘을 충분히 키운 지금,

수화는 또 하나의 소통의 문이 되어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는 언어,

그것이 우리가 향해갈 새로운 길이다.

수화는 벌써 시작했다

하루에 한 가지씩 배우고 있다

내 목표는 단 하나다.

“기종이가 더 독립적이고, 존중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


– 자립의 문 앞에서


지난 2024년은 기종이에게 ‘자립의 문이 열린 해’였다.

정서의 평화, 학습의 성장, 독립의 실천, 치료의 안정,

모든 변화가 하나로 이어졌다.

또한 마을에서 기종이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이제는 더 친근과 따뜻함으로

기종이를 도와주고 있다

나는 그 곁에서 여전히 조용히 말 걸며,

그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불빛을 지켜본다.


그 빛은 이제 작지 않다.

그는 스스로의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반드시 서야한다.

나의 돌봄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손이 세상을 만지고,

그의 눈이 희망을 닮을 때,

나는 다시 배운다. 돌봄은 기다림이다.“


“2024년은 한 사람의 내면이 자립의 문을 열었다.”


다음 편 예고

7부

3년을 지켜 본 기종이는 그 폭행이 있던 그 날 이후

입을 닫았다.

이렇게 밝고 성실한 아이 였는데….

나는 이제 과거,학교,가정,사회복지의 체계를 뒤짚으며

그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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