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사각지대, 기록되지 않은 존재 그리고 너무 늦게 도착한 질문
7부
기종이는 말을 잃었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이 기종이에게 말 걸기를 멈췄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귀가 막힌 것도 아니었고,
그의 입이 고장 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제도와 시선과 관심의 바깥에 있었던 존재였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의 침묵을
단지 ‘장애’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그건 너무 쉬운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기종이는 조용히 ‘사라졌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고등학교에 다니며
학습에 어려움에 있었다.
간호사인 동창을 다시 만났을 때
“우리 학교에는 특수학급이 아예 없었어요,
기종이는 수업시간에 그냥 먼 산을 바라보고 있고,잠을 자고 했었요”
그래도 그 당시에 기종이는
어눌하게나마 말도 했고,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항상 즐겁고 미소를 띠며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졸업 이후
기종이는 복지 체계의 지도에서 벗어났다.
그래도 학교를 다닐 때에는
선생님이나 친구들 등 주위에 노출이 되어서…..
기종이를 관심 가지고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기종이는 연풍에서
읍내 학교까지 35km를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단절이 되면서
오직 동네에서 고립된 생활을 했다.
1999년(지적장애2급)장애인 등록은 되어 있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장애인 복지를 비롯해 모든 것이 미흡한 시대였다.
그에 따른 정기 건강검진도 없었고,
사후 관리나 사례 회의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어머니 역시 지적장애가 있어
동네 이장을 통해서 간신히 장애 등록은 했지만
어머니 스스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복지 신청을 할 수 없었고, 향후 장애인 복지 정책이 바뀌는
제반 정책들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아이는 사회 시스템의 외곽에 고립되었다.
동네 그 누구도 그 기종이의 상태를 물어오지 않았고,
누구도 “요즘 기종이는 잘 지내냐”고 묻지 않았다.
동네에서는 그냥 장애인으로 인정 받고 있었다.
대인기피증이 있어 사람을 피하는 엄마
말 없는 엄마와 말 못하는 아들의 관계는
이렇게 십 수년째 계속 된 것이다.
이들이 겪었을 고통과 어려움을 나는 상상할 수도 없다.
나는 그의 과거를 파고들기 위해
이 동네 토박이 어르신을 비롯해
7,80세 되는 많은 분들을 만나 기종이의 과거를
들었다.
“ 기종이, 불쌍하지 엄마만 똑똑 했어도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 동네에 친척이 있지만 ,사실 남보다 못해”
“ 동네에서 십시일반 도와 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지”
한가지 의문이 든다.
운전기사가 기종이를 폭행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고,
폭행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이 때렸다고 했는데
동네에서는 그냥 남의 일인양 지나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가끔 폭행을 당할 때의 그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공포,두려움,위협,
나를 도와 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에
기종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기종이 집에 남아 있는것은
낡은 졸업앨범과 졸업장 한 장
그리고 기억 속 희미한 미소뿐이었다.
기록은 없었고,
문서도 없었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그렇게
괴산에서도 연풍면
그곳에서도 오지인 산 자락 안쪽에서,
복지라는 단어는 있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활동지원사로서
기종이를 3년간 돌보고 있지만,
그의 20년을 잃어버린 것이
그 누구도 아닌 사회 전체라는 사실에 자꾸 죄스럽다.
말을 멈추게 만든 폭력도 문제지만,
그 침묵이 20년 동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만든 구조가 더 문제다.
아이 한 명이 말을 멈추면.
누군가는 반드시 물었어야 했다.
“왜 말을 안 하지?”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도움을 줄 수는 없을까?”
“맞아서 그렇게 됐데”라고만 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대책이나 치료는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기종이를 향해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기종이에게 너무 늦게 왔다.
이미 말문은 닫혔고,
몸과 마음은 무너졌고,
세상과의 연결은 끊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나는 묻고 싶다.
“규종아, 너는 왜 말을 멈췄니?”
“그때, 얼마나 무서웠니?”
“정말, 아무도 너를 찾아주지 않았니?”
비록 대답은 없지만
나는 매일 기도처럼 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것이
이 사회가 규종이에게 너무 늦게 묻지 못했던
가장 첫 번째 질문이 되기를 바란다.
다음 편 예고
8부 < 말하지 않아도 마음은 자란다>
규종이는 지금도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 침묵 속에 아직 꺼내지 못한 말이 숨어 있다는 것을.
다음 글에서는
규종이와 나 사이에 오고가는
말 없는 대화와 눈빛 속 감정들을
‘비언어적 소통’이라는 주제로 풀어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