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고발 PD의 기록 , 그리고 언론인의 사명
약자들은 오늘도 숨죽이며 살아간다.
나는 30년 넘게, 넓게는 세계를, 좁게는 이 땅의 구석구석을 취재하며 살아왔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본질은 언제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다.
권력자의 부패, 가진 자들의 탐욕, 그리고 지역 곳곳에 뿌리내린 토착 비리
그것이 내가 가장 먼저 카메라를 들이대야 했던 현장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현장을 지나며 깨달은 건,
이 세상의 다수는 여전히 약자라는 사실이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밀려났다.
그들의 신음은 들리지 않았고, 목소리는 편집되거나 지워졌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입이 되어야 했다.
나는 가난한 청년이었다.
공장을 전전하며 고졸 검정고시로 대학을 갔다.
밤마다 공부하며 스스로 다짐했다.
“언젠가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KBS PD가 된 뒤,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서도
내 마음이 향한 곳은 언제나 ‘시사 고발‘이었다.
내 취재의 철학은 단순했다.
첫째, 약자의 말을 가감 없이 듣는다.
둘째, 사실이라면 끝까지 취재한다.
외압이나 협박이 들어와도 물러서지 않는다.
언론의 생명은 신뢰이기 때문이다.
제보자의 믿음을 배신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언론이 아니라 장사꾼의 거래다.
나는 수없이 보았다.
죽을 각오로 제보를 한 사람이 끝내 배신당하는 장면을.
그들의 정보가 반대로 가해자에게 넘어가
제보자가 위협을 받는 일도 있었다.
‘엿 바꿔 먹었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제보를 받고도 돈을 받고 취재를 포기한 언론인들,
그들의 변명은 언제나 “윗선에서 막았다”였다.
나는 그런 세태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더더욱 신뢰를 지키려 했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방송’ 그게 나의 최소한의 윤리였다.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한 제보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엔 나도 밀렵을 했지만, 이제는 안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뱀을 대량으로 잡아 파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는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까지 알려줬다.
그 말을 믿고 나는 원주 톨게이트로 갔다.
약속된 시각, 한 승용차가 통과했다.
그 차 안에는 수십 마리의 구렁이와 야생동물이 상자 속에 뒤엉켜 있었다.
그날의 냄새와 울음소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날 이후, 나는 ‘신뢰’가 곧 언론의 생명이라는 걸 다시금 확신했다.
언론인은 흔히 ‘무관의 제왕’이라 불린다.
하지만 그 왕관은 금빛이 아니다.
그건 양심과 신뢰의 무게로만 버틸 수 있는 왕관이다.
한 편의 방송이 세상을 바꾸기도 하고,
한 줄의 글이 누군가의 생을 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언론인의 사명은 언제나 무겁고 외롭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며 수많은 고락을 겪었다.
가정의 어려움, 아내의 우울증,
그리고 나 자신이 무너질 듯했던 순간들.
하지만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걸어온 길의 끝에는
언제나 약자들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진심을 인정받아
나는 국가청렴위원회로부터 반부패방지 공로로 노무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 상은 내게 명예가 아니라 ‘책임’이었다.
부패와 싸운 세월을 위로해 준 훈장이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물과 믿음이었다.
그들의 신뢰가 있었기에, 나는 30년을 버틸 수 있었다.
퇴직한 지금도 내 마음속 카메라는 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약자의 편에 서 있다.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때까지,
그들의 침묵이 세상의 울림이 될 때까지,
나는 계속 기록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이유이자, 앞으로도 살아갈 이유다.
“언론은 권력이 아니라 양심이다.
세상을 밝히는 빛은, 언제나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