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정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나의 장기 투자
이제 내 나이 예순 중반을 넘겼다.
뒤를 돌아보면, 내 인생은 늘 예측 불가능한 길이었다.
공장에서 흘린 땀, 방송국에서의 긴장된 현장, 그리고 지금의 조용한 귀촌의 삶까지.
모든 순간은 불투명했고, 그 불투명 속에서 길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야 깨닫는다.
삶이란 애초에 ‘확실함’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불투명함’을 견디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일이라는 것을.
불확실한 미래가 두렵지 않은 이유는,
내가 이미 그 속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나에게 묻는다.
“남은 생을 무엇에 투자해야, 안정과 행복이 공존할까?”
젊을 때는 건강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밤을 새워 편집을 해도, 새벽까지 취재를 나가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몸이 흔들리면 마음도 흔들리고, 마음이 흐려지면 글도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건강을 가장 확실한 ‘자산’으로 삼았다.
아침에는 짧게라도 기도하며 내 마음을 다잡는다.
60분의 걷기는 나를 현재에 묶어두는 밧줄 같다.
걷다 보면 문득 하늘이 예뻐 보이고,
들판의 냄새 속에서 오래된 나의 시간을 떠올린다.
그 순간마다 깨닫는다.
몸은 단순히 살아 있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의 리듬을 지탱하는 하나의 악기라는 것을.
이 악기가 맑게 울릴 때,
비로소 내 글에도, 내 하루에도 진심이 깃든다.
사랑은 젊은 날의 감정이 아니라,
시간이 깊어질수록 익어가는 인내의 열매다.
아내와 함께 살아온 세월이 40년을 넘겼다.
그 세월 동안 우리는 수많은 풍파를 지나왔다.
경제적인 어려움, 방송의 압박, 그리고 아내의 병마와의 싸움까지.
그럼에도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하나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특별한 이벤트보다
그저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 따뜻한 국을 함께 떠먹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
짧은 대화 속에 담긴 미묘한 온기,
말 한마디보다 큰 침묵의 위로가
우리 부부를 다시 연결시켜 준다.
젊을 때는 사랑받는 법을 배웠다면,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서로의 주름을 어루만지며,
남은 시간을 아낌없이 건네는 것,
그것이 내가 아내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하는 최고의 투자다.
나는 오랫동안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카메라 뒤에서 약자의 눈물을 담았고,
현장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사회의 병폐를 고발했다.
그 시절의 기록은 세상의 변화를 위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쓰는 글은
조금 다르다.
이제는 세상을 고발하는 대신,
사람의 마음을 껴안고, 그 안의 빛을 찾아내는 글을 쓰고 싶다.
기종이와의 침묵 속 대화,
돌봄의 현장에서 마주한 인간의 존엄,
아내와 함께 늙어가며 느낀 시간의 무게.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한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살아있다’는 증거다.
펜을 잡는 순간, 나는 다시 사회와 이어지고,
한 줄의 문장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이 기록의 축적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장기 투자다.
이제는 나 혼자 잘 사는 시대가 아니다.
내가 배운 것을 나누고,
내가 걸어온 길을 다음 세대가 조금 더 쉽게 걸을 수 있도록 남겨야 한다.
그래서 나는 실습생들에게 장애인 돌봄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도움이 아니라 ‘존중의 철학’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또한 방송을 배우려는 젊은 후배들에게 말한다.
“진짜 저널리즘은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고.
전수는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다.
그건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다시 살아내는 행위다.
그 속에서 나는 스스로 성장한다.
그것이 내 인생의 또 다른 배당이다.
인생의 후반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건강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불투명함이 두렵지 않다.
그 안에는 여전히 배울 것이 있고,
여전히 쓸 이야기가 있고,
여전히 사랑할 사람이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불확실한 내일을 향해 천천히 걸으며,
나는 오늘을 조금 더 단단히 살아낸다.
그 하루가 쌓이면 그것이 곧 나의 미래가 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쓰고,
여전히 돌보고,
여전히 배우며,
여전히 사랑한다.
그것이 내가 택한 장기 투자 방식이다.
불확실하지만, 가장 인간적인 길.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배운다.
삶은 끝까지 ‘성장하는 존재의 이야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