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길이는 신이 정하지만 , 삶의 깊이는 내가 만든다.
요즘은 흔히 말한다.
“이제 인간 수명은 100세 시대다.”
의학은 발전했고, 약은 좋아졌고,
사람들은 오래 살 준비를 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이렇게 되묻는다.
“과연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일까?”
몸이 살아 있어도 마음이 메말라 있다면,
시간만 길어질 뿐 인생은 깊어지지 않는다.
오래 사는 법보다, 깊게 사는 법.
그게 내가 요즘 가장 관심을 두는 주제다.
퇴직 후, 나는 ‘시간의 주인’을 다시 배워야 했다.
그동안은 일에 쫓겨 살았다.
그러다 갑자기 시간이 쏟아지자
한동안 허둥댔다.
그때 깨달았다.
삶의 길이는 내가 정할 수 없지만,
삶의 방향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남은 시간을
‘사는 연습의 시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글을 쓰며 내 마음을 정리하고,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며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밝히는 일.
이 두 가지가 내 인생의 두 축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게 가끔 묻는다.
“아직도 그렇게 바쁘게 지내세요?”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이제야 진짜로 사는 중이에요.”
오래 사는 법은 병을 예방하는 데 있지만,
깊게 사는 법은 마음을 단련하는 데 있다.
몸이 건강하다고 삶이 건강한 것은 아니다.
삶의 건강은 감사와 배려, 그리고 의미에서 자란다.
아내의 암 투병을 지켜보며 그걸 배웠다.
몸이 아픈 날에도
아내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여보, 오늘 하늘이 참 맑아요.”
그 말 한마디가 내게는 하루의 기적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진짜 오래 사는 사람은
하루를 깊이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흔히 ‘수명 200년’을 꿈꾼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르게 생각한다.
육체의 수명은 80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마음의 수명은 200년이 되어야 한다.
그 마음은 글로, 사랑으로, 그리고 기억으로 이어진다.
내가 남긴 글 한 줄,
누군가를 위로한 말 한마디가
내 삶의 수명을 늘려준다.
이제 나는 욕심내지 않는다.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오늘을 의미 있게 사는 일’이다.
한 사람을 돕고,
한 마디 따뜻한 말을 건네고,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그 순간이
내 인생의 하루를 백 년처럼 만든다.
삶의 길이는 짧아도,
그 깊이는 내가 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