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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마음으로 통하는 법

침묵 속에서 배우는 인간의 존엄

by 최국만


부부가 오래 살면 서로 닮는다고 한다.

얼굴도, 말투도, 심지어 밥을 먹는 습관까지 닮아간다.

누군가는 그걸 두고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얼마나 깊은 뜻인지,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하나의 삶을 함께 엮어가는 것.

그게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우리가 택한 길이었다.


사랑해서 결혼하면 모든 게 순조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 또한 4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고비와 눈물의 밤을 지나왔다.


삶의 풍랑이 몰아칠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오해하고 상처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을 버텨낸 끝에,

이제 우리는 말보다 마음으로 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젊은 날의 사랑은 뜨거운 말로 시작했지만,

노년의 사랑은 조용한 눈빛과 손길로 이어진다.

하루에도 수없이 마음이 부딪히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의 표정 하나로 내 마음이 읽히고,

내 한숨 하나에 그녀의 눈빛이 젖는다.


이제 우리 사이엔 말보다 긴 침묵이,

그 침묵 속에는 말보다 깊은 이해가 흐른다.


이심전심.

그 말은 부부 사이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말을 기종이를 통해 다시 배웠다.


그는 말을 하지 못한다.

처음 만났을 땐, 대화가 막혀 답답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함께한 세월이 쌓이면서

그의 눈빛 하나, 손끝의 떨림 하나,

표정의 미묘한 변화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말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진심은 눈빛으로도 전해진다는 것.


그와 함께한 3년의 시간은

인간이 얼마나 깊은 존재인지,

소통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내게 뼈저리게 가르쳐 주었다.


노년이 되면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다 해봐서 안다.”

“네 마음 다 안다.”


나는 그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안다.

그건 상대의 존엄을 무심히 가로채는 말이다.

아무리 많은 경험을 쌓아도,

타인의 마음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진정한 존엄은 ‘안다’고 말하지 않는 데 있다.

그저 조용히 들어주고,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게 마음으로 통하는 법이다.


나는 아내의 마음을 읽고,

기종이의 눈빛을 읽으며 깨달았다.


노년의 품격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데 있다.

그건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존중이다.


말보다 마음으로 통하는 법.

그건 나이 들수록 더 절실해지는 삶의 언어다.

말이 필요 없는 관계,

그저 눈빛 하나로 충분한 관계—

그게 바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존엄의 모습 아닐까.


오늘도 나는 말없이 아내를 바라본다.

그녀는 미소로 답한다.

그 한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더 이상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말보다 깊은 곳에서 통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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