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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r 31. 2017

3월- 이미 쓰여져야 했던 편지 (1)

이모,


나는 이모를 떠올리면 하얀 가운이 제일 먼저 떠올라. 서귀포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리면 제일 먼저 건너편 약국으로 뛰어갔지. 유리문을 열면 종이 딸랑거렸고 이모는 약을 짓다가도 고개를 내밀고 환히 웃어줬어. 매번 냉장고에서 비타민 음료수 한 병을 꺼내 내게 건넸지. 음료수의 청량감은 이모의 웃음소리보다 늘 못했어. 


천안의 약국에선 이모의 가운을 볼 기회가 많진 않았어. 열차를 타고 내려가면 이모는 늘 근무를 빼고 역까지 나와 날 맞아줘야 했으니까. 대학생이 되고 토플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만 천안을 몇 번 내려갔었어. 이모는 그 때마다 역으로, 시험장으로 날 태워다줬어. 그때도 약국에서 챙겨온 비타민 음료를 챙겨줬고.


이모는 밥을 먹을 때에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했어. 집에서 다 먹은 밥상을 한 쪽으로 치워놓고, 이모는 엎드려 등을 밟아달라고 했지. 난 나보다 왜소한 이모의 등이 부서질까 무서웠어. 그래서 발에 체중을 다 싣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꾹꾹 눌렀지, 얹힌 것 같다는 등 아래 부분을. 이모는 엎드린 상태로 고개를 돌려 티비를 보면서 실실 웃었어. 난 천안의 아파트에서 그 장면만 선명하게 기억나. 그리고 늘 후회섞인 가정을 하지. 이모가 소화가 영 안되고 변비로 괴롭다고 웃을 때,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왜 하지 않았을까. 내가 등을 밟으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왜 자신있게 말했었을까. 그렇게 성의를 다해 꾸욱, 꾸욱, 이모의 등을 밟지 않고 병원 입구로 이모의 등을 떠밀었다면 이모는 더 빨리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통증으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암의 존재를.  


정밀검사가 끝나고 알게 됐지. 이모가 1개월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나는 믿지 않았어. 모든 게 농담인 것처럼 가볍게 대했어. 이모가 암세포와 싸우는 동안 병원 입구를, 병실 문턱을 촐싹이며 넘나다녔지. 생과 사의 경계에서 그 문제의 엄숙함과 무게도 외면하면서. 손바닥만한 털모자로 민머리를 감춘 이모를 보러 갈 때도 나는 실없는 농담만 건넸어. 심각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어. 버텨줘, 살아줘, 절박한 부탁들은 내가 혼자 있을 때만 중얼거렸어. 나와 함께일 땐 이모가 웃어주길 바랬거든. 나와 있을 때 만이라도 말야.   


크림색 후드티를 입고 간 날, 이모는 내 옷이 이쁘다 했지. 안감은 기모고 기장이 길어 엉덩이까지 덮는, 따뜻한 옷이었어. 내 옷은 이미 헤져서 이모에게 차마 줄 수 없었어. 언제 어디서 산 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 오래되고 평범한 옷이었어. 그렇지만 이모가 이쁘다고 한 한 마디에, 난 신촌과 이대 앞의 옷가게를 전부 뒤졌다. 찾지 못하자 처음으로 동대문 옷상가에도 갔지. 커다란 매장들을 돌고 돌아, 난 겨우 내 옷과 색상이 비슷한 후드티를 찾았어. 내 옷에는 분홍색 영문 문구가 적혀있었는데, 그 옷의 문구는 길지 않아도 색깔이 화려했던것 같아. 내가 언뜻 보고 무지개인줄 알았거든. 이모도 그 옷을 받았을 때 무지개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었잖아. 


퇴원할 때 이모는 곧잘 그 옷을 입었어. 이모는 옷 아래부분으로 머리를 먼저 넣고 목부분으로 나올 때까지 천천히 잡아당겨 입었지. 팔을 빼는 건 맨 마지막 순서였어. 옷을 입는 짧은 순간동안 이모는 옷에 완전히 파묻힌 것 같았어. 옷은 점점 이모에게 커졌어. 그래도 이모는 끝까지 입어줬지. 이모, 그 옷은 이모가 하도 많이 입어서 이모를 보내는 날 같이 태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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