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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Sep 04. 2018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 안나의 책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5)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 아내 안나가 썼던 책상이 커텐 뒤에 찰랑이는 빛을 받고 있다. 


 작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법은 정말이지 많습니다. 그의 작품 <카리마조프의 형제들>, <죄와 벌>, <가난한 사람들> 들 중 대표작 하나를 고르는 일마저도 어려운 일이지요. 비평가들의 찬사나 비판을 인용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작가에 대한 상징적인 일화나 그가 남긴 명언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요. 저는 그가 죽기 전, 아내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옙스카야에게 했던 말을 나누고 싶습니다. 


 기억해줘, 아냐. 내가 당신을 언제나 뜨겁게 사랑했다는 걸.
그리고 꿈에서라도 당신을 배반한 일이 없다는 걸 말이오.



 안나는 이 말을, 10년 넘게 함께 산 남편이 아내에게 쉽게 할 수 없는 말로 회상합니다. 더군다나 도스토예프스키는 피를 토하는 매우 고통스럽고 공포스런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저도 안나의 말에 동의합니다. '언제나 뜨겁게'라는 말은 결혼생활과 쉽게 연결되는 말은 아니니까요. 이 한마디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 안나의 존재가 어떠했는지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작가로서의 탁월함은 이렇게 한 여성을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던 자질에 일정 부분 기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안나는 작가와 속기사로 처음 만났습니다. 안나는 당시 속기 교육을 받아 처음 일을 시작하는 단계였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빚 때문에 빠듯한 마감 안에 원고를 완성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탈고를 그들은 멋지게 해냈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을 서두르지요. 25살이라는 나이 차이는 그들의 결혼생활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독한 가난과 도스토예프스키의 건강이 더 큰 괴로움이었어요. 그러나 둘은 서로에게 좋은 동반자로서 그 문제들을 극복해나가며 14년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갑니다. 안나의 회고록에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했던 행복과 고통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한 작품을 읽을 때 작가에 대한 정보와 작품이 쓰일 당시의 시대적 상황 등을 함께 놓고 보면 더 풍부한 해석이 가능하지요. 안나의 회고록은 작가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를 엿보게 해줍니다. 가족과 빈민들에게 턱없이 부족한 재산을 내주고, 욱하는 성격에 질투가 강하면서 마음은 무척 여린, 도박을 좋아하면서 작가로서 성실함을 거스르지 않는 모습들. 아내인 안나의 눈으로 바라보고 서술한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생생해서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노름을 위해 기계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안나는 오히려 찢어질 듯한 가난과 빚 독촉으로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그를 존경했습니다. 작가로서 그를 평가할 때 그가 놓인 경제적, 정신적 고난을 고려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회고록에도 담겨있어요. 




문단과 사회에서는 자주 도스토옙스키의 작품과 다른 재능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너저분하게 쌓인 잡동사니 더미인 반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잘 다듬어져 있다고 … 도스토옙스키를 비난하곤 했다. 또한 다른 작가들이 살았던 여건과 작업 환경을 남편의 환경과 비교하거나 그런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들 거의 대부분(똘스또이, 뚜르게네프, 곤차로프)은 건강하고 유복한 사람들로서 자기 작품을 충분히 구상하고 다듬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두 가지 힘든 질병에 시달렸고, 대가족과 빚을 짊어지고 있었으며, 내일에 대한, 절박한 빵에 대한 괴로운 생각에 짓눌린 사람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기 작품을 다듬는다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2, 3장은 이미 잡지에 실렸고, 4장은 인쇄에 들어갔고, 5장은 우편으로 『러시아 통보』에 보냈는데, 나머지는 아직 쓰지도 못한 채 구상만 하고 있는 그런 경우가 그의 생의 마지막 14년 동안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다. 그래서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이미 인쇄되어 나온 자기 소설을 읽다가 한순간 잘못 쓴 부분이 확연히 눈에 들어와 자신의 애초 구상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절망에 빠진 적이 너무 많았다.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면” 하고 그는 종종 말하곤 했다. “수정할 수만 있다면! 무엇 때문에 글이 잘 안 풀렸는지, 내 소설이 왜 성공하지 못할지 이제야 보이는군. 어쩌면 이 실수로 내 ‘사상’을 완전히 죽인 셈인지 몰라.” 


*인용: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옙스카야, 최호정 역,『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 -안나 도스토옙스카야의 회고록』,엑스북스, 2018 







 안나는 결혼 후에도 속기로 그의 집필을 도우면서 집으로 찾아오는 그의 손님을 환대하고 채무업자들을 상대하는 등 남편이 작품에 매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빚에 허덕이는 가계 관리를 도맡았는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대한 수입을 늘리기 위해 출판사업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러시아 최초의 도전적인 직업 여성으로 안나를 평가하는 목소리도 존재해요. 분명한 것은 그녀가 없었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후기 작품들은 쓰여지기 어려웠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가정을 지켜내는 아내이면서 작가의 정신적 동반자이기도 했으니까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일찍이 자신의 작가활동에 미치는 안나의 영향력을 인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를지라도 회고록을 읽어본다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한시도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지켜주고 배려했다는 것을요. 그래서 그녀에 의해 서술된 도스토예프스키를 우리는 연민을 가지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센나이 광장 근처 작은 골목길을 돌아가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임종을 맞은, 그들이 살던 마지막 집이 있습니다. 지금은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2층에는 당시 가족이 살았던 상태 그대로 내부를 보존해놓았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에서 말년의 도스토예프스키는 호흡 때문에 몇 번을 멈춰 쉬며 올라가야 했다고 해요. 저는 전시를 반대 순서로 관람했는데, 그래서 다른 책상을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상으로 착각했답니다. 그건 안나의 책상이었어요. 책상에 놓여있는 노트를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그녀가 관리했던 서적의 숫자들이 빽빽하게 적혀있더군요. 그 책상에 앉아 왼편을 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서재 입구가 보입니다. 아마도 그녀는 그가 글을 쓰는 중에 굳게 닫힌 문을 종종 바라보았을테죠.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마음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채우고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서재. 그가 글을 쓰던 책상과 책을 보관했던 책장, 그리고 그가 죽음을 맞이했던 쇼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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