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4)
도시의 중심 해군본부 건물인 해군성에서부터 알렉산더 넵스키 Alexander Nevsky 기마상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로지르는 넵스키대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성기부터 중심가였던 이곳은 오늘까지도 가장 번화한 거리로 건재합니다. 시티투어 버스의 이층 창가에 앉아 인파로 가득한 대로를 가로지르다 보면, 옛날 사륜마차를 타고 진흙탕에 구두 밑창이 더럽혀질 걱정 따윈 없이 무도회장으로 향하던 귀족의 기쁨을 비슷하게 체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은 대로의 양편에는 살구빛, 상아빛, 연두빛, 하늘빛… 파스텔톤의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축물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습니다. 이제 대부분 건물의 1층은 관광객을 호객하는 기념품 가게이거나 식당으로 변해있지만, 수백 년 전에는 귀족만 출입이 가능하던 상류세계의 공간이었겠지요.
유럽의 화려함을 그대로 재현해내고자 했던 계획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그중에서도 도심의 중심가였던 넵스키대로의 휘황찬란함은 지금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화려함의 이면에는 검고 어두운 무언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넵스키대로의 화려함과 고상함, 우아함이 인간의 탐욕과 기만, 어리석음과 추악함 위에 지어진 허상이라는 것을 일찍이 작가 니꼴라이 고골은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근대 문학의 선구자이자 환상과 풍자극의 대표 작가로 평가되는 그는 <네프스끼 거리>의 단편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이 거리를 믿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은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묘하게 우리를 희롱하는 것일까! … 그러나 가장 기묘한 것은 네프스끼 거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오, 이 네프스끼 거리를 믿지 마라! … 모든 것이 기만이고 모든 것이 꿈이며 모든 것이 겉보기와는 다르다! …이 네프스끼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무엇보다도 밤이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들어차고 짙어지면서 하얗거나 크림색으로 빛나는 집 벽들이 드러나게 될 때, 도시 전체에 굉음과 번쩍이는 불빛이 넘쳐흐른다. 무수한 마차가 다리 쪽에서 몰려오고 마부가 고함을 치며 말 위에서 뛰어내릴 때, 그리고 악마가 모든 것들을 실제 모습으로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램프의 불을 직접 켤 때, 네프스끼 거리는 더욱 심하게 사람들을 속인다.
「네프스끼 거리」, 『빼쩨르부르그 이야기』, 니꼴라이 고골, 조주관 역, 민음사, 2015, p.281-282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이 인간을 혼란과 고통에 빠져들게 하지만, 네프스키대로의 본모습은 운명의 장난보다 더 고약합니다. 1830년대에 왕성한 저작활동을 했던 고골은 당시 위선과 부조리로 가득한 러시아의 세태를 해학적으로 꼬집는 단편들을 많이 발표했습니다. 특히 어느 날 별안간 자신의 코를 잃어버린 8급 관리 코발료프 소령이, 자신의 코가 사람처럼 행세하며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하는 단편 <코>나 억척같이 돈을 모아 겨우 장만한 새 외투를 강도에게 빼앗긴 후 충격으로 죽은 9급 관리 아까끼 아까끼예비치가 유령으로 나타나는 <외투> 이야기, 매일 국장의 집에서 그가 애용하는 펜을 깎아주던 9급 관리가 미치광이가 되는 과정을 담은 <광인 일기> 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빼쩨르부르그 이야기』로 엮인 단편 다섯 편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작가의 비판의식과 놀라운 상상력, 그리고 풍자와 해학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러시아의 작가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한 찬사*는 그의 환상 문학이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소외 받는, 모욕 받고 상처 입은 소시민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됐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고골의 작품에는 당시의 답답한 공무원의 행정이나 이유 없는 행패, 부조리한 관료제를 풍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의 주인공은 하급관리인데, 모두가 궁색하고 비굴하며 소심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선량하고 억울한 희생자가 되기 때문에 웃음 뒤에 연민을 불러일으키죠. 반면, 귀족이나 고위인사들은 출세나 돈, 여자만 밝히는 인물들로 묘사됩니다. 비록 그들의 타고난 권력과 행운으로 비극에 처하지 않더라도 독자에게는 조롱 섞인 웃음거리가 되지요.
단편의 역자이기도 한 조주관 교수는 작품 해설에서 당시의 상트페테르부르그를 ‘유럽 문명을 급하게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럽의 창’으로서의 인공도시’라고 설명합니다. ‘계급적, 물질적 가치에만 집착하는 범속성과 속물성’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모여든 도시인거죠. ‘서구의 앞선 물질 문명을 배우고 익혀 그 대열에 합류하려는 현실적 욕망만이 팽배’하고, ‘계급과 서열만이 중시되는 관료제도 하에서 명예와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고골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무시되는 곳으로 묘사되는 거죠. 네프스끼대로는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와 러시아 전체의 현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공간인 것입니다.
여행 내내 거닐었던 넵스키도로는 택시기사의 말처럼 “여름에는 단 일분도 잠들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백야로 훤한 밤에는 오히려 한낮의 더위로 피해있던 사람까지 몰려나오며 거리는 더 붐비고 활기를 띠는 것 같았어요. 귀족과 하인, 장교나 관리 등 신분이나 계급은 이제 거리에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낡은 소지품으로 창피를 당하고 더위나 추위를 대비하기 위해 식사를 굶으며 억울한 사정을 토로할 곳조차 없는 수많은 아까끼예비치가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노천 카페와 레스토랑을 채운 확연한 관광객과 대로 곳곳의 예술가들, 호객행위를 하는 인형탈 알바들과 점원들까지. 그들 사이를 통과해가며 과연 그들 각각이 마지막까지 수호하고자 하는 소중한 외투는 어떤 것들일까. 잠시 생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덧.
도스토예프스키의 찬사라고 알려져 있는 이 말은, 사실 당시 러시아 작가들의 통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남긴 말로 소개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하네요. 19세기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작가, 문학 비평가였던 E. 보규에(1848-1910)가『러시아 소설』에서 “우리는 모두 고골의『외투』에서 나왔다”는 언급을 소개하며, 이는 당시 러시아 작가들의 통념이라고 기술한다고 합니다. (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인간과 문학, 김준석 각주를 참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