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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Aug 15. 2018

위대한 계획 도시의 이면 (2)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3)

 무에서 창조된 도시는 인간의 의지가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증거 그 자체겠지요. 그러나 자연을 거스르고 무고한 희생을 담보로 만들어졌기에 도시의 근간은 여전히 위태롭습니다. 생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가 가진 모순을 가장 직접적으로 말하는 작품은 푸쉬킨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요. 알레간드르 세르계예비치 푸시킨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대문호입니다. 그의 이름이 낯설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 라는 시구는 익숙하실 거예요. 이 외에도 푸쉬킨은 아름다운 서사시와 서정시, 단편소설 등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청동기마상>에는 그가 살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잘 드러납니다. 작품에 붙인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라는 부제가 이를 확실히 뒷받침해줄 수 있어요. 


예술 광장 내에 세워진 푸쉬킨 동상. 뒤에 보이는 건물이 러시아박물관이다. 예술 광장의 왼편에는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이, 앞에는 쇼스타코비치 아카데미 필하모니 공연장이 있다. 



 작품의 제목이자 중요한 사건지점이 되는 <청동기마상>은 앞에서 소개해드렸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만든 표트르 대제의 기마상입니다. 작품은 도시를 건설하는 표트르 대제의 야망을 드러내는 것으로 시작해요. 


 황량한 물결 일렁이는 강기슭에 서서
그는 위대한 생각을 품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스웨덴을 위협하리. 
 여기에 도시가 세워지면
오만한 이웃 나라 애가 타겠지.
자연이 정한 이치대로 우리는 이곳에
유럽을 향한 창을 내고
굳건하게 바닷가에 서 있으리. 



 이 서사시의 주인공 예브게니는 성씨도 근무지도 알 필요 없는 보잘것없는 하급 관리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 파라샤와의 행복한 미래만을 꿈꿀 뿐, 다른 욕심은 없는 소박한 남성이죠. 그러던 어느 날, 홍수로 도시가 침수되고 그녀는 실종됩니다. 예브게니는 절망으로 실성하고 그 이후 ‘산 사람도 죽은 유령도 아닌 채’로 살아갑니다. 1년이 지나 다시 홍수가 도시를 뒤덮자 그의 고통은 다시 생생히 되살아납니다. 예브게니는 ‘미동도 없이 어둠 속에 청동 머리 치켜들고 있던’ 표트르 대제의 기마상 앞에 섭니다. 그리고 ‘숙명의 의지로 바닷가에 도시를 세운 그 자’를 원망하며 노려보죠. 이 모든 비극이 그의 눈먼 야망에서 비롯됐다고 믿기에, 그에게 ‘두고 보자’라고 이를 갑니다. 하지만 평범한 시민으로서 그는 고작 분노할 뿐, 이에 저항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찍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핀란드만에서 불어오는 강풍으로 홍수의 피해가 잦고 또 심했습니다. 애초에 평화롭고 안정적인 도시가 될 수 없는 땅이었지요. 실제로 <청동기마상은> 1824년에 도시를 초토화시켰던 홍수를 토대로 쓰여진 작품이라고 말해집니다. 즉,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인간의 과욕을 응징하는 물의 공포가 이 도시를 감싸고 있습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돌의 도시로 상징되곤 합니다.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대립은 이 도시의 숙명이었고, 자연에 의한 인공의 붕괴는 예견된 종말과 다름 없었지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문학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기원과 특징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호학은 네이버 지식백과 <도시는 역사다> 편에서 짧지만 흥미롭게 정리되어 있어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종종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네바강. 석양이 지는 강변의 풍경은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합니다. 

 


 근대와 계몽을 자처했던 이 도시가 그 화려함 속에 힘 없고 가난한 이들의 비극을 초래해왔다는 모순을 예민한 예술가들이 포착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순 속에도 표트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은 아랑곳 없이 고개를 치켜들고 먼 바다를 손 끝으로 가리킬 뿐이죠. 저는 문학 공부는 한 적 없는, 말랑말랑하게 시와 소설을 읽어왔을 뿐인 독자예요. 그래서 러시아 문학을 논할 수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지만, 그런 성글고 어설픈 실력으로라도 여행지의 문학을 교차해서 읽는다면 여행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이 느꼈답니다.






문학카페의 한 테이블에 앉아있는 젊은 시절의 푸쉬킨. 전 무서웠어요. 무서운 모형 대신 빈 의자로 남겨놓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행 TIP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푸쉬킨의 자취를 밟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두 곳. 하나는 모이까 강변의 '푸쉬킨 박물관'으로 푸쉬킨이 숨을 거두기까지 마지막으로 살던 아파트예요. 서재 등이 원래 상태에 가깝게 잘 보존되어 있고, 특히 전시 투어 (가이드 또는 오디오) 내용이 알차니 관심 있으신 분은 꼭 방문해보세요. (투어를 들어야만 입장이 가능하답니다!) 또다른 한곳은 넵스키 대로 모퉁이의 '문학카페' 입니다. 푸쉬킨이 평상시에도 즐겨 찾은 카페이자 마지막 결투에 가기 전에 들른 곳으로도 유명한 이 곳은, 외벽에 푸쉬킨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젊은 푸쉬킨의 조형도 카페 안에 설치되어 있어요. 제게는 '문학카페'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보다 관광지로서의 느낌이 더 강해 실망스러웠지만, 식사나 맛있는 디저트를 즐길 수 있고, 저녁에는 라이브 연주도 펼쳐지니 한번쯤 들려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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