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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Aug 15. 2018

위대한 계획 도시의 이면 (1)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2)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petersburg)는 러시아의 거대한 대륙에서 발트해의 핀란드 만과 접한 곳에 위치합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표트르 대제는 유럽의 새로운 중심이 되는 항구 도시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자리잡을 수 있기를 꿈꿨습니다. 18C 네바강의 Zayachy 섬, 일명 토끼섬에 Peter and Paul Fortress를 쌓아 올림으로써 그는 역사의 첫 삽을 떴지요. 도시의 이름은 도시의 수호자인 성 베드로(Peter)에서 따왔지만, 동시에 표트르 대제 이름의 영어식 발음과도 같습니다. 여기에 도시를 의미하는 독일어 burg를 합성해서 이름이 만들어졌지요. 사회주의 혁명 이후 레닌을 추모하기 위해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1991년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정면으로 네바강을, 뒤로는 성이삭 성당을 지고 있는 표트르 대제의 기마상. 예카테리나 2세가 자신의 왕위 정당성을 다지기 위해 전략적으로 세운 동상이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최초의 황제라고 칭해집니다. 이전의 왕들과 비교하여 확연히 러시아의 국력을 강화하고 절대 왕권을 확립했기 때문이죠. 그가 정치적 야욕을 품고 새로운 러시아를 건설하기 위해 선택한 땅이 바로 늪지대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였습니다. 당시 북유럽에서 최강국으로 세력을 떨치고 있었던 스웨덴이 발트해 인근 국가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고 그도 대륙이 아닌 바다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북극해로부터 불어오는 흉포한 바람에 속수무책에다 지대가 낮아 홍수가 잦았던 땅이지만, 발트해에 접해있다는 이유 만으로 그는 도시건설을 추진했습니다. 늪지대의 지반을 단단히 하기 위해 엄청난 개수의 말뚝을 박았는데, 이 거대한 공사에 희생된 농노들의 수가 많아 백골이 이 도시를 받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철저한 계획 아래 만들어나갔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일찍이 사절단을 이끌고 네덜란드와 영국 등의 유럽국을 순방했고, 그때 접한 서구 문명을 이 도시에 의욕적으로 재현해냈습니다. 도시의 주요 건물은 이탈리아계 스위스 건축가의 디자인을 따르게 했고, 도시의 중심 대로인 넵스키대로는 프랑스 건축가가 만들게 했지요. 주요 고위 계층을 비롯해 귀족과 상인들에게 새롭게 건설된 도시로 이주하도록 명령해 생트페테르부르그는 순식간에 러시아의 화려한 수도가 되었습니다. 의복이나 음식, 식습관, 제도들까지 유럽의 최신 동향을 모방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그는 모두에게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도시가 되었습니다. 황제의 결단과 추진으로 한 국가의 수도가, 그것도 단기간에, 창조된 셈입니다. 



강변의 지대가 낮은 땅이기 때문에 페테르부르크 곳곳에는 수로가 뚫려있다. 표트르 대제가 꿈꾸었던 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이나 베니스의 풍경과 비슷하다.





 여기에는 분명 장점이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습니다. 바로 역사가 부재한다는 것이지요. 역사는 그 도시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의지할 수 있는 뿌리, 근간입니다. 위대한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로부터의 수기> 작품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이 지구를 통틀어 가장 추상적이고 계획적인 도시’라고 언급한 적 있습니다. 확고한 목적을 설정하고 계산을 통해 만들어진 도시지만, 사실 이 도시가 추구한 것은 맹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과 근대에 대한 열망이었으니까요. 오랜 기간 동안 거주해온 사람들에 의해 문명과 문화가 쌓아 올려진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 이 도시는 고유의 ‘정신’이 부재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럴싸한 이국의 것들만을 모방한 도시. 그래서 어떤 이들에겐 새롭고 충격적인 자극으로 다가간 반면, 또 다른 이들에겐 허황되고 무의미한 신기루 같은 곳으로 느껴졌을 거예요. 





*여행 TIP

 Zayachy섬(일명 토끼섬)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를 안다면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압도적인 규모나 화려한 건축물을 볼 수는 없지만,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의 의지를 엿볼 수 있으니까요. 요새 내부는 무료로 개방되고 강변은 부드러운 모래로 뒤덮여 가족, 연인 단위로 나들이를 나온 현지인들도 많습니다.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자칫 엄숙하고 딱딱한 이 요새 섬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요새 안에서는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베드로와 바울 성당이라고도 부릅니다)과 정치범 형무소로 사용됐던 뜨루베츠꼬이 성채 형무소 박물관 등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또는 네바강 방향의 요새 위를 걸을 수 있는 파노라마관도 있으니, 그곳에 올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경을 보는 일정을 추천할게요. 단, 이 모든 곳은 개별 입장료가 있답니다. Zayachy섬에서 이오나노브스키 다리를 건너 빠져나와 표트르 대제의 오두막과 아우라호까지 본다면 더 효율적인 동선으로 여행하실 수 있을 거예요. 



Zayachy섬 요새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과 네바강, 그리고 형무소 고리키 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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