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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Sep 07. 2018

조약돌이 부딪히는 소리, 그들이 멀어지는 속도

영화 <체실 비치에서>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

플로렌스의 파란색 피로연 드레스와 호텔룸 침대의 붉은 침구가 일으키는 대비가 긴장감을 배가시킵니다. 



 방금 결혼식 피로연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한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젊고 아름다운 커플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사랑이 충만하죠. 그들의 순수한 사랑이 결실을 맺은 가장 행복한 날. 그런데 낭만과 행복이 넘쳐야 할 그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첫날밤을 앞둔 설렘과 기대에서 비롯되는 긴장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감춰왔던, 말할 수 없는 무언가 때문에 망설이고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긴장이지요.



 사실 그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사업가 아버지와 대학교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유복하지만 보수적인 교육을 받아온 플로렌스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합니다. 졸업 후 바이올리니스트로의 성공을 꿈꾸며 재능 있는 친구들을 모아 자발적으로 현악 5중주단을 결성할 만큼 야망도 추진력도 있는 여성입니다. 반면에 초등학교 교장인 아버지와 함께 뇌졸중의 어머니와 나이차이가 많은 쌍둥이 여동생을 돌봐온 에드워드. 늘 어지럽고 더러운 집 안에 대해 불평한 적 없이 온순했지만 맘 속으로는 자유와 독립을 꿈꿉니다. 그는 역사학자로서의 미래를 그리지만 구체적인 계획 없이 수석 졸업을 하지요. 우연히 만난 그들은 첫눈에 반하고 순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사랑을 키워옵니다. 그리고 달콤한 연애의 결말인 결혼에 자연스럽게 다다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와 보여주지 못한 이면이 있습니다. 그 긴장감이 위태롭게 이어지다가 결국 결정적인 순간 터져버리고 상황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사랑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상대방을 만족시키고 싶은 열망과 상대방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열망이 강해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지고 과도한 배려를 하게 되기도 하죠. 그러나 사랑을 지키고 싶은 그런 노력도 어디까지나 자신의 기준에만 부응할 뿐입니다. 침묵과 거짓, 은폐와 기만들은 겨우 미세한 차이를 가지니까요.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의 이야기에 대해서 어디까지 고백해야 상대방은 아프지 않을까요? 어떻게 말을 해야 관계에 치명적이지 않을까요? 고백에 대해 판단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까다롭고 위험한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기 위해서는 진솔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두 사람 모두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털어놓을 준비와 상대방의 것을 오해 없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죠. 얄팍한 눈가림, 임기응변식의 해법이 서로간의 대화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봉합되지 못한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니까요. 



 그들이 뒤돌아서 멀어졌던 체실 비치를 생각합니다. 작가는 어째서 하얗게 빛나는 모래 사장이 아닌 검은 자갈이 깔린 해변에서 그들을 헤어지게 했을까요. 저는 에드워드가 한 시답지 않은 말 중에, 체실비치의 자갈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는 해변의 조약돌은 수 천년 동안 파도에 마모되면서 위치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부들이 한밤중에도 조약돌의 크기를 가늠하여 그들의 위치가 어딘지 파악할 수 있다고 했지요. 저는 자신이 겪어온 시간과 존재하는 공간을 정확히 드러내는 조약돌이 매우 상징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 모두 자신의 과거를 고스란히 응축해서 고집스럽게 서 있는 조약돌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어리고 자존심 강한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화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세계에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상대의 세계에 입장하는 첫 관문에서 그들은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플로렌스는 대답 없는 에드워드를 향해 등을 돌리고 천천히 멀어집니다. 등을 돌린 그들의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허망하게 아름다웠습니다. 플로렌스의 발에 밟히는 자갈돌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그들이 이별하는 건조한 박자처럼 들렸습니다. 자갈들은 진창이나 모래처럼 걸음을 잡아 끌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매끈거리는 돌의 표면에 미끄러지고 미끄러지면서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말을 계속 되새겼을 겁니다. 자신의 발걸음 소리에 또 다른 소리가 포개지는 것을 기대하던 마음도 어느 지점에선 버려야 했겠지요. 그녀가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에드워드는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원작 소설작가인 이안 매큐언이 영화의 각색작업에 직접 참여해서인지, 소설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결들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만큼이나 아름다웠던 소설의 마지막 구절을 나누고 싶어요.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대신, 그는 냉정하고 고결한 침묵으로 일관하며 여름의 어스름 속에 선 채, 그녀가 허둥지둥 해변을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힘겹게 자갈밭을 헤쳐나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작은 파도들이 부서지는 소리에 묻히고, 그녀의 모습이 창백한 여명 속에서 빛나는 쭉 뻗은 광활한 자갈밭 길의 흐릿한 한 점으로 사라져갈 때까지. 

 

*『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우달임 역, 문학동네, 2013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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