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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Oct 03. 2018

난 당신의 몸도 사랑하는 걸요

영화 <에브리데이>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나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에브리데이>는 할리우드의 틴무비이면서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리아넌이 사랑에 빠지는 상대는 자신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예요. 정확히 말하면 그는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사람입니다. 원래 몸의 주인인 의식을 밀어내고 하루간 그 사람으로 지낸 후, 또 다른 이의 몸으로 옮겨가지요. 누구의 몸을 빌릴지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다만 비슷한 지역에 거주하는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에게로 한정되어 있어요. 로맨스를 위한 의도적인 제한이었겠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름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리아넌에게 불려지기 위해 그는 자신을 ‘A’로 부르기로 합니다. 


 <에브리데이>의 설정을 알게 된 순간 대부분 한국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떠올릴 것입니다.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형적인 모습이 바뀐다는 설정은 두 영화가 모두 같아요.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뷰티 인사이드>의 남자 주인공 우진은 <에브리데이>의 A보다 자신에 대한 개념이 더 분명합니다. 그는 가족이 있고, 이름이 있으며, 집도 작업실도 가지고 있으면서 가구 디자이너로서의 일을 해나가지요. 우진은 타인의 몸을 빌려 살아가는 A와 달리, 자신이 아닌 타인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A는 24시간의 규칙적인 주기로 특정 지역과 연령의 한계 안의 타인들을 옮겨다니지만, 우진은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변하고, 성별과 나이뿐만 아니라 국적, 인종의 경계도 넘나들죠. 종합적으로 우진은 A보다 ‘자기동일성’을 주장하는데 조금 더 유리한 처지라고 느껴져요. 



사랑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가 아닐까, 그런 반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영화 특유의 잔잔하고 차분한 느낌 때문에 좋아하게 된 영화 <뷰티인사이드>. 

 




 고등학생 리아넌이 매번 다른 이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나타나는 A에게 혼란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낯선 사람일 때도 있었지만, 자신이 아는 친구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고요. (A와 리아넌이 처음 만난 건 평소에 리아넌을 아껴주지 않는 남자친구의 몸으로 A가 들어왔던 날입니다.) 타인의 몸에 들어간다는 설정때문에 <에브리데이>에서는 의식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A가 타인의 의식을 몸으로부터 ‘밀어내고’ 자신이 들어간다고 하는 설명이나, 자신의 성별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대답*, 또는 몸을 내어줬던 타인은 A가 들어왔던 하루의 기억을 뿌연 장면처럼 희미하게 기억하는 모습 말이예요. 이런 설정은 몸과 의식을 분리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의식을 USB처럼 다른 신체나 기계로 옮겨 담을 수 있다는 SF의 설정과도 멀리 있지 않은 것이겠죠. 


 여기서 그런 믿음이 옳은 것이냐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으려 해요. 그 자체만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철학적 논쟁이니까요. 대신 로맨스라는 장르적 특성에 맞게 ‘자기(만)의 몸을 가지지 않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저의 대답은 ‘아니요’ 입니다. 저는 의식 못지 않게 ‘몸’이 그 사람에 대해 말해주는 것도 많다고 믿어요. 타고나는 신체적 조건들도 있지만, 몸에 새겨진 자세나 몸에 밴 습관 같은 건 그 사람의 게으르고 성실함, 철저하거나 자유로운 성향 정도를 읽어낼 수 있는 힌트가 되기도 하죠. 그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면일 수도 있고요. 또한 상대방의 고유한 체취와 체온, 손을 맞잡거나 껴안을 때의 포개지는 느낌 같은 건 그 사람이 아니면 줄 수 없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의 의식만큼이나 그의 몸도 중요해요. 둘 중 하나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A와 리아넌이 자신들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에는 사회적인 시선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찾아오는 A와 함께있는 리아넌을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말이지요. 영화 <뷰티인사이드>의 여주인공도 매일 상대를 바꿔 데이트하는 모습때문에 구설수에 휘말리게 되었죠. 더 나아가 결혼은 어떻게 하며,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그러나 리아넌과 A와 감정을 유지하는 데 있어 한쪽의 몸이 없다는 사실은 문제제기 되지 않더라고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몸 없는 A를 사랑할 자신이 있나요? 




영화 <에브리데이>는 오는 10월 11일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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