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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Oct 07. 2018

정은영: 무엇이, 어떻게, 동시대의 예술이 되는가?

MMCA Seoul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올해의 작가상

 정은영 작가의 작품에는 두 축의 문제의식이 교차합니다. 하나는 젠더의 문제입니다. 나뉘어진 성역할과 이를 강화하는 이분법적 성담론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또다른 하나는 아카이브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역사로 기록되고 전통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그러한 판단과 수행을 이루는 권위는 어디에 있으며 그 방식은 어때야 하는지, 작가는 묻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오늘날 더더욱 강력하게 요청 받는 이 두 질문을 품고 여성국극을 파헤칩니다. 


 여성국극은 오로지 여성으로만 구성된 극단으로 극 중 남성 배역도 여성배우가 연기합니다. 해방 후 50년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전통극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현대극으로도 인정받지 못해 결국 무대 안팎에서 모두 잊혀지고 만 극형태이지요. 작가는 여성국극을 남녀의 고정된 성역할 경계를 무너트리는 경쾌한 수행의 장으로 조명합니다. 또한 여성배우들이 극단 공동체 생활 안에서 하나의 성으로 규정될 수 없는 실천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여성국극 단원의 삶은 절대적인 것으로 믿어졌던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고정적인 것이 아님을 증명해줍니다.  







 하지만 여성국극은 60년대 이래로 이미 어떤 무대에서도 만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사회적으로 보존될 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이 극단의 희소한 자료들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국극에 대한 아카이브 작업은 쉽지 않습니다. 아카이브는 모름지기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형태의 자료여야 하니까요. 작가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고령의 배우들의 증언의 빈틈을 나름의 재구성과 해석으로 채워갑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합니다. 그녀의 아카이브가 역사를 호명하고 지연시키는 장치로서 기능했으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이전까지 아카이브가 역사를 결정하고 물화 시키는 권위에 가까웠다면 그녀가 시도한 아카이빙은 역사의 확정을 유예하고 계속 의미를 생성하는 현재적인 활동일 것입니다.

 

 여성국극의 형태를 오늘날의 무대에서 새롭게 구현해내는 시도를 보는 것은 즐거웠습니다. 무대 위 일회성의 순간을 영구하게 새긴 영상작품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그러나 작가는 단순한 유쾌함을 넘어서 더 복잡한 고민들에 봉착하게 만듭니다. 이분법의 해체가 무대 위의 연극적인 연출이 아닌 실재세계에서 어떻게 가능할까. 작가의 시도에서 연극성이 두드러져 보일수록 규범의 해체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도전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해체의 시도가 여전히 고정된 역할을 전복시키는 형태에만 머무르는 것 또한 서글픈 한계였죠. 기존의 성을 답습하는 형태로만 새로운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일 수는 없는 거니까요. 본연의 얼굴을 가리기 위한 두텁고 과한 화장과 의상, 그리고 남성다움을 모방하는 과장된 발성과 몸짓들. 그 연기 속에, 아직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득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올해의 작가상 Korea Artist Prize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 문화재단이 2012년부터 전시공간과 제작 지원, 그리고 국내외 전문가 및 폭넓은 관객을 대상으로 한 홍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해마다 4명의 후원 작가를 선정하여 전시를 개최합니다. '올해의 작가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지점은 '올해'와 '작가'입니다. 즉, 올해 바로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누구이며, 좁게는 미술계에서, 넓게는 우리 사회에서 비평과 토론의 소재로 삼고 있는 작가들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전시이죠.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개요 참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진행 중인 <올해의 작가상 2018> 전시는 11월 25일까지 입니다. 정은영, 구민자, 옥인 콜렉티브(김화용, 이정민, 진시우), 정재호 작가의 전시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올해의 가장 뜨거운 작가들의 전시를 감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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