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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Oct 15. 2018

당신의 가치를 믿고 있다는 신호를

영화 <스타이즈본>이 상기해준 눈빛

 영화를 본 후 글을 쓰고 싶어 질 때가 있어요. 보통은 영화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했을 때이죠. 그래서 줄거리를 되짚어보거나 인물의 내면을 내밀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특정 장면을 자세히 분석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 ‘스타이즈본’은 조금 달랐어요. 이 영화에 대해 말하기 보다 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더라구요. 그러고보니 사적인 글을 쓴 지가 제법 됐어요. 최근까지 저에 대한 언설을 삼가고 외부의 것들을 제 글에 담으려는 의식적은 노력을 기울였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굳게 닫혀 있던, 제 과거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락스타인 잭슨은 공연이 끝나고 술을 마시러 간 드렉퀸 클럽에서 앨리의 공연을 보게 됩니다. 잭슨은 그녀의 퍼포먼스에 매혹되고, 이후 그녀가 들려주는 자작곡을 듣고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게 되죠. 그러나 앨리는 기획사 오디션에서 번번히 탈락하는 오랜 무명생활 중이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큰 코 때문에 가수가 될 수 없다는 씁쓸한 농담을 하는데, 잭슨은 그 코조차 완벽하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망설이다 불러준 자작곡을 듣고서도 그녀를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라고 칭송합니다. 이 말들은 잭슨이 그저 그녀를 꼬드기기 위한 번지르르한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잭슨의 눈빛, 진심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그 눈빛이 증명해주고 있었죠. 그리고 다음 날, 그는 그녀에 대한 그의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거짓말 같은 무대가 그때부터 시작되죠. 



 제가 잭슨의 눈빛을 알아차릴 수 있던 건 저 또한 그런 눈빛을 마주한 적이 있기 때문이예요. 저는 강단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강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자존심도 강해서 힘들고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땐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않는 편이예요. 슬프거나 괴롭거나 –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타인과 나누는데도 서툴고요. 그런 제가 자존감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넌 할 수 있어. 너라면 잘 할거야’ 라고 말해준 이가 있었습니다. 상투적인 응원의 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그 이의 눈빛만큼은 절대 부정할 수 없었어요. 열렬한 믿음과 사랑이 가득한. 그게 깊은 늪에서 저를 일으켜 준 힘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고요. 


 잭슨과의 공연을 통해 유명세를 얻게 된 앨리는 기획사와 계약을 하게 되고 가장 주목받는 신인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잭슨은 트렌드에 완벽하게 맞춰진 팝스타 앨리의 행보에 진정성이 결여되었다는 불만을 품게 되고 알코올 의존도도 점점 높아집니다. 결국 앨리가 꿈꿔왔던 영광스러운 순간에 그는 술에 취해 끔찍한 실수를 저지릅니다. 이 장면이 생중계되는 바람에 이들은 웃음거리가 되고 앨리의 명성에는 큰 타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잭슨을 비난해도 앨리의 마음은 여전히 그를 향합니다. 앨리는 여전히 그를 보살피며 그와 함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요. 마지막 그가 돌이킬 수 없는 배신을 한 후에도 그녀는 그를 추억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낭만적인 사랑을 믿진 않지만 변함없이 잭슨을 사랑했던 앨리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합니다. 하지만 그 중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나의 가능성을 알아봐주고 그 가능성을 실현하게 만들어준 사람입니다. 나를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들어준 그런 사람 말이예요. 성장의 기록은 그 성장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함께한 이의 기억과 함께 나에게 명징하게 새겨지기 마련이니까요. 누군가에게 조건 없는 믿음과 사랑을 주는게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요즘,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자신감을 잃고 확신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누군가는 당신의 가치를 믿고 있다는 신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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