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Nov 20. 2018

'기원'을 찾아 떠난 시인의 생애

허수경 시인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말을 해야만 꽉 막힌 마음이 풀린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지나치면 화가 되듯이, 말이 지나치게 많으면 도리어 마음이 공허해집니다. 특히 전해야 할 뚜렷한 이야기가 있어 만들어진 말을 할 때가 아니라, 그저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무의미한 말들을 내뱉어야 할 때 말이죠. 가득 차 있지만 정작 중요한 속은 비어있는, 범람 속에 빈곤한 그 말을, 저는 허수경 시인의 말을 빌려 ‘기원 없는 말’이라고 부르려 합니다. 말이 빚어지게 된 분명한 시작이 없는 말. 역사가 없는 말, 그래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기 어려운 말. 허수경 시인은 말의 ‘기원’을 찾는 일에 민감했습니다. 그것은 시를 쓰는 일뿐만 아니라 그녀가 한평생을 바친 또 다른 세계의 일에서도 그러했습니다. 


 허수경 시인은 시인 등단 후 독일로 건너가 고고학을 전공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새로운 공부였지만 실제 유물발굴 작업과 연구를 진행하면서 박사 학위를 땄고, 그 이후에도 독일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시인의 말에 대한 태도와 고고학, 이국에서의 삶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듯 합니다. 그 사유의 결과가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라고 여겨지고요. 2003년에 나왔던 산문집의 개정판인 이 책에는 이국의 낯선 풍경과 거기에 겹쳐지는 고향의 기억들이 담겨있습니다. 또 고대 역사를 발굴하고 해독하는 고고학의 쓸모에 대한 고민도 녹아있어요. 나아가 왜 머나먼 이국으로 떠나와 실용적인 학문이 아닌 고고학을 공부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지에 대한, 즉 자신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드러나 있습니다. 




산문집 가장 마지막에는 허수경 시인의 자필로 쓰인 짧은 편지와 '밤 속에 누운 너에게' 시 전문이 있습니다.




내가 밥벌이를 하던 곳은 방송국이었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쓰는 일이 내 업이었는데, 한동안 나는 매일매일 생방송으로 나가는 프로그램을 맡은 적이 있었다. 매일매일 원고를 쓰고 그 원고가 매일매일 전파를 타고 흐르는 것을 보면서, 내가 쓰는 말이, 그러니까 글이 아니고 말이 그렇게 흘러다니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마음이 사나워지더구나. 어떻게 살아야만 그 근원을 스스로 알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거…… 상스러운 말, 그리고 그 말에 휘둘리는 삶.

이곳에서 내가 겪은 것은 혼자 있음, 가난함, 이런 것들이지만, 내가 하는 말에서 멀어지면서 얼마간 자유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먼 나라 언어를 배우고 아이처럼 서툰 말로 겨우 빵을 사고 뉴스나 책을 남의 언어로 남의 일처럼 읽는 동안 나는 많이 차가워지고 혹은 나에게 혹독해졌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줄어들고 그곳에서 살아왔던 이야기들에서도 얼마간 놓여나게 되었는데……
(…)
 그 냄새 끝에 아무런 생각다운 생각을 못하고 기숙사 방안에서 감기라도 앓는 봄날이면, 말에서 놓여난 자유를 아직도 자유답게 누리지 못하고 다시 그 말의 굴레 안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지켜보면서, 아직 나는 이곳에 더 머물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고개를 흔든다. 말을 하는 근원을 나 스스로가 알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날, 그리고 그 새로운 언어가 나를 이끌고 갈 수 있는 날, 나는 내 코끝으로 스치던 냄새들을 새로운 말로 적을 수 있으리라. 그때면, 나는 다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끊을 수 있으리. *



 시간의 퇴적층 안에서 기억되지 못한 삶의 흔적을 끄집어내고 잊힌 역사를 복원해내는 고고학. 그 일은 시인에게 인류의 뿌리를 찾아 시간을 거스르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시간과 죽음, 유한과 영원의 경계를 손끝으로 만지는 경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단단한 유형의 유물에서 무형의 역사를 무한히 상상해내야 하는 감각은 어쩌면 시를 통해 단련해온 시인의 감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기원’이 담지해주는 확실한 의미, 그 이유를 찾으려는 욕망이 시인의 고고학, 시인의 시, 시인의 삶 전체를 이끌어온 것이 아닐까. 깊고 넓어 모두 훑기도 불가능한 허수경 시인의 세계를, 조심스럽게 가늠해봅니다. 


 암투병 끝에 허수경 시인은 지난 10월 작고했습니다. 말의 근원을 스스로 아는, 새로운 말을 찾으면 돌아오겠다 약속했던 시인은 결국 돌아오지 않고 독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저는 한동안 시인이 벗어버리고 싶던 말, 움켜쥐고 싶었던 말을 알고 싶어 그녀의 시집과 산문집을 여러 번 들추어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원망할 게 없는 아름다움만이 놓여있어, 시인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엄격했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시인의 다음 언어는 이제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이미 남기고 간 것들이 있어 충분하다고 위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말의 기원, 말의 단단함, 생각의 분명함, 나의 강인함, 그리고 새로운 언어의 탄생까지. 나는 시인의 욕망을 좇을 예정입니다. 



*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허수경, 난다, 2018, p. 192-193에서 인용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가치를 믿고 있다는 신호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