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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y 05. 2019

근현대 아시아 미술의 변화를 읽다

MMCA과천 <세상에 눈뜨다> 기획전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AWAKENINGS: Art in Society in Asia 1960s-1990s)


F.X. 하르소노의 <만약 이 크래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전시장에 들어서서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분홍색 크래커입니다. 입에 물면 바삭! 하며 기분 좋게 씹힐 것같은 과자가 눈앞에 쌓여 있죠.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크래커들이 모두 권총모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과자의 동산은 순식간에 무기의 무덤으로 변하죠. 이 작품은 F.X. 하르소노의 <만약 이 크래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입니다.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거장이 만든 총 모양의 크래커는 일상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들어온 폭력성을 상징합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사회에서 폭력은 평범하고 익숙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비비탄으로 상대를 맞추는 저격 행위를 가장 즐거운 ‘놀이’라고 말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섬뜩했던 순간은 제가 일상의 폭력성을 처음 감지했던 경험이기도 해요. 


 하르소노의 작품은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전의 오프닝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오프닝 작품으로 선정된 데에는 세계와 관객을 향해 던지는 비판적인 질문과 그 질문을 구현하는 새로운 양식이 전시의 의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선보인 이 전시는 1960년대부터 30여 년 동안의 아시아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명하는 국제 기획전입니다.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3국의 미술관이 참여해 4년여간의 프로젝트가 주목한 것은 아시아 미술이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변모한 미학입니다. 아시아의 근현대는 탈식민, 냉전, 근대화, 민주화 등 다양한 정치사회적 변화들을 겪는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를 관통하며 아시아의 예술은 독립성과 독자성을 중시하던 관념에서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거나 적극적으로 담론을 형성하는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전시는 실험적이고 급진적인 예술 실천을 대표하는 아시아 13개국의 100여명의 작가의 170여점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미학의 출현에는 세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격동하는 시대 속에 근대의 인식론은 붕괴되고 근대성의 소산이었던 이데올로기와 질서, 권력이 모두 의심받기 시작했습니다. 예술 역시 예외일 수 없었죠. 회화의 순수성이나 자기 완결성을 갖춘 미학 담론에 저항하여 예술의 본질과 기능은 재정의되었고 세계 뿐만 아니라 관객과 갖는 관계성 또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시는 특히 아시아 예술의 역동적인 변화의 흐름을 시대순으로 세심하게 배열했습니다. 미술은 고정된 장르적 경계와 물질성에 대한 관념에 문제적으로 접근했습니다(섹션 1).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거대 도시에 깔린 소비자본주의와 도시의 일상이 주요 문제의식으로 자리잡기도 하였으며(섹션 2), 민주화를 위한 국가적 투쟁에서 예술은 사회운동의 실천적 주체가 되었습니다(섹션 3). 그리고 현대까지 예술은 사회정치적 비판과 재해석, 대안의 실천, 새로운 연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매체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섹션 3).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섹션은 '구조를 의심하다'란 제목의 첫번째 섹션이었습니다. 미술의 고전적인 경계가 무너지고 확장해나가는 태동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소 포괄적인 ‘일상성’의 개념을 조금 더 정치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가령 실제 선술집의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 놓은 이강소의 <소멸-선술집>은 전시를 방문한 관람객의 개입이 작품의 내용이 되는 작품입니다. 만남의 계기를 마련하고 체험의 공간으로 놓이는 미술은 상호성과 관계성의 장 그 자체가 되는 것이지요. 일상성의 중요한 특성으로 시간성, 일시적으로 존재했다 사라진다는 점이 있습니다. 미술이 유한의 한계에 맞서 불멸의 작품을 남긴다는 욕망에 기원하고 있었다면, 현대의 미술은 부식, 쇠락, 사라짐 등의 미래가 형상화됩니다. 신체가 예술의 새로운 매체로 조명받게 된 데에도 다양한 인식론의 변화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가장 익숙하면서 낯선 신체,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가장 절실히 체험하게 되는 바탕, 동물적 본능을 담지하는 나만의 고유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통제되고 다양한 관념이 기입된 복종하는 신체. 이러한 성찰은 자신의 몸을 강력한 저항의 캔버스로 삼는 작가들을 만들어냈지요. 오노 요코의 <컷 피스(Cut Piece)> 퍼포먼스나 타이완의 장자오탕 <판챠오> 앞에서 강력한 소구로 작용하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강소의 <소멸-선술집> 작품과 첫 번째 개인전 당시의 기록사진들
오노 요코의 퍼포먼스 비디오(좌)와 장자오탕의 사진 작품(우)



 유한한 인간이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은 세계와의 접촉면을 넓히는 데 있다는 말을 기억합니다. 이 전시는 자신이 발 딛고 있던 세계의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작가들을 보여주면서 우리 자신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바로 이 세계 속에서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좌표에 대해서. 우리는 쉽고 간편하게 세계에 대해 발언하지만, 우리가 다종한 주체들과 맺고 있는 관계와 그 관계 안에서의 위치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기 때문이죠. 아시아 미술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세계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그 장을 넓혀왔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적 사유가 선행되지 않는 한 새로운 시각의 '눈 뜨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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