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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y 14. 2019

아흔여섯 할머니와의 인사

할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용기가 필요했던 인사의 순간

입석칸의 차가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2시간을 달렸다. 창으로 새어들어온 햇빛이 발끝에서 너풀거렸다. 

 



 고모는 정 오겠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라고 했다. 
 

 청주행 버스는 일찌감치 매진이었다. KTX도 마찬가지. 부모님은 무리해서 올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예감이 들 때 용기를 내지 않으면 오랫동안 후회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긴 줄을 서 나는 무궁화호 열차의 입석표를 겨우 샀다. 차가운 기차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열차의 덜컹거림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 생각했다. 마음의 어떤 면을 곧추 잡아야 단단해지는 것일까. 단단한 물성이라는 건 애당초 마음이라는 것에 가능이나 한 것일까. 


 아흔여섯의 할머니는 올해 초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응급실을 오가시다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고모는 할머니가 종종 기억을 잃는다고 하셨다. 오십 세의 여사로 돌아가거나 스무살의 처녀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린 아이가 된다고 했다. 배가 고프다고 울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며 떼를 쓰고 투정도 심해진다고 했다. 아빠는 할머니가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상처받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전생애에서 나의 존재가 얼마나 짧은 그림자인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치만 내가 할머니에게서 잊혀지는 건 그리 큰 상처가 아니었다. 내가 아흔여섯의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게 되는 것에 비하면.






 요양병원은 논밭이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시골의 어느 언덕배기에 있었다. 납작하고 길게 펼쳐진 병원건물은 초등학교 건물이었다. 운동장이었을 너른 공터는 투박한 자갈이 깔린 주차장이 변해 있었고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만이 유일하게 오랜 역사의 증인이었다. 넘실거리는 나무 그늘 아래로 어느 노인이 보행기를 끌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걸음이 느리고 보폭이 짧아 유심하게 보지 않으면 나무와 나란히 서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침대 팔거리에 모로 앉아 있었다. 당신의 막내 아들을 알아보았고, 막내 아들의 며느리를 알아보았다. 나는 아빠와 엄마의 뒤에서 내 순서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의 재회가 끝났을 때 할머니이-, 하고 불렀다. 불안한 만큼 니이-를 길게 끌었다. 할머니가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이내 환하게 웃으셨다.
 

왔냐아-


 그 투박한 인사는 할머니의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기억이 여기 온전하게 놓여 있다는 게 분명해서. 그러니까 내 앞에 할머니는 정말 아흔여섯의 할머니라서 나는 덥썩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도 내 손을 꽉 움켜쥐셨다. 할머니가 늘 걱정하던 차가운 내 손이 온기로 꽉 차올랐다. 할머니는 한참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어리고 소중한 것을 살피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말씀하셨다.

 차암 이쁘다



 요양사는 할머니가 오늘 컨디션이 무척 좋은 거라고 말씀하셨다. 귀한 손님이 올 걸 알았는지, 잠깐 누웠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는 일을 반복했다고 했다. 낮잠에 들지 않고 오후 내내 창문 너머를 내다보셨다고. 아빠와 엄마는 할머니를 위해 사온 선물들을 하나씩 꺼냈다. 엄마는 찰보리빵의 끝을 작게 톧아 할머니께 드렸고 할머니는 그 조각을 또 나눠 우리에게 주었다. 할머니는 감물을 들인 모자를 받자마자 얼른 써보았고, 하얀 들꽃이 촘촘히 박힌 남색 원피스를 무척 맘에 들어했다. 그렇게 우리에게 안도와 행복을 안겨주느라 할머니는 금방 지쳤다. 할머니가 불현듯 나와 엄마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둘은 관계가 어찌 되오?






 한 때 코흘리개 아이들이 북적거려 종알댔을 교실에는 이제 네 개의 침대가 양 벽으로 놓여 있다. 그리고 더는 시간의 중력에 저항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아니, 저항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걸어온 긴 시간에 비해 이제 그들에게 허락된 침대는 너무 작다. 고작 몇 뺨 되는 침대 위에서 삶을 되새김질 하다가 과거 어디쯤 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 여기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로비에 나온 노인들은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아득한 시선으로 가장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절대 오지 않고 만날 수 없는 것을 기다리는 것을. 가장 불가능한 희망을 품어야만 포기하지 않게 되는 삶일 것이다. 죽음의 냄새와 가장 가까이 맞닿은 시공간 속의 삶은.  


 아빠가 아까까진 기억하셨잖아요, 며느리랑 손녀딸이에요, 설명하니 할머니는 이제 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자야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아빠는 할머니의 뻣뻣한 다리를 조심스레 들어올리고 천천히 할머니를 뉘여 드렸다. 나는 할머니가 멀리 가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아 뺨을 대고 누운 아기 같은 할머니.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할머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할머니 눈가에 눈물이 그렁했다. 할머니의 얼굴은 몹시 일그러져 있었다. 할머니는 반쯤은 온전한 정신 속에서 미끄러지는 자신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어 괴로워하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자꾸 잊게 되는 것이,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여주는 게 미안하고 속상했던 것이다. 

 내 마음은 그때 무너졌다. 기억이 사라져 가는 문턱에서 잃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던 할머니. 끝까지 자기 자신이길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할머니. 용감한 나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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