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Mar 31. 2017

3월-이미 쓰여져야 했던 편지를 모두 쓰고

이미 씌여져야 했던 편지(4)

이모는 30kg가 겨우 넘었습니다.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지만 봄 딸기 몇 알은 먹곤 했습니다. 입안에 넣고 오랫동안 오물거렸습니다. 내 주먹 크기만한 이모의 작은 손엔 누런 거죽과 그 위를 촘촘히 덮은 주사바늘 흔적이 다였습니다. 이모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으면 얇은 종이가 천천히 구부려지다가 끝내 접히는 것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그럼에도 이모는 용감했습니다. 내가 알던 어떤 사람보다 더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모는 마지막 날까지 사력을 다해 버텼습니다. 이모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시 온전한 삶으로 돌아가려는 희망은 이모가 애초에 품지 않았을 겁니다. 이모는 다만, 우리의 곁에 조금이라도 더 머무려는 마음으로 버텼던 거라고 난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모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았고 이모가 응당 누려야 하는 것도 많다고 믿었습니다. 이모에게 죽음은 너무 이르고 불공정하다고 울었습니다. 이모는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간호하는 우리의 눈을 하나하나 바라 보았고, 그 눈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거라고 말입니다.   


이모를 보내고 나서 난 혼자서 병원을 몇 차례 갔습니다. 이모가 입원했던 다인실 병실 복도를 천천히 걷기도 하고, 휴게실 벤치에 텅 빈 눈으로 앉아있다가 온 적도 있습니다. 1층 구내식당에서 죽을 주문하고 죽이 완전히 식을 때까지 느릿느릿 밥알을 씹다 오기도 했습니다. 지독하게 싫었던 병원이었습니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고, 울음과 비명이 깔려있는 곳. 차가운 질서 속에 정돈된 세계. 아무개의 간절한 생의 욕망도, 긴박한 죽음의 순간도, 결국 개수로 치환되고 마는 냉정한 곳. 그런데도 나는 그런 곳에 다시 가야 할 만큼, 이모가 그리웠습니다. 이모를 보내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6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봄의 초입에서 백목련을 만납니다. 나무를 올려다 볼 때마다 이모의 하얀 가운, 이모의 하얀 환자복, 이모의 하얀 후드티, 이모의 하얀 미소.. 그런 것들을 떠올립니다. 가련하게 생각했던 흰 꽃잎의 운명은 매해 반복됩니다. 어쩌면 백목련은 어떤 꽃보다 먼저 피고 지기 때문에 그렇게 눈부신 빛을 뿜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보곤 합니다. 꽃잎의 순수하고 순결한 색 때문에, 때 이른 죽음이 아주 비극적인 것은 아니라고 위안해 보기도 합니다. 이모가 보여준 용기가 더는 슬픈 비극으로 기억되지 않게 하는 일은, 남겨진 사람의 몫입니다. 그래서 나는 매년 최선을 다해 이모를 애도합니다. 목련이 하얗게 빛나는 이 3월, 나는 거르지 않고 이모와 재회하고 이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3월- 2010년 3월의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