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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r 31. 2017

3월- 2010년 3월의 편지

:이미 씌여져야 했던 편지(3)






이모. 나는 오늘 정말 우울했어. 몇 가지 이유를 자각하고 있었고, 그것이 내 힘을 다 말라버리게 할 만큼의 가치가 없다고도 생각했어. 그런데도 난 도무지 우울한 그늘 밑에서 헤집어진 마음을 추스러 일어나지를 못했어. 왜 그랬을까? 나는 쉬는 시간마다 전화번호 몇 개를 골라보았지만 통화버튼은 누르지 않았어. 본래 쾌활해야 하는 나의 성격상, 짧은 통화 뒤에 더 큰 우울이 몰려올 것 같았거든. 그래서 갔던거야, 이모한테. 이모가 읽고 싶다던 책을 도서관에서 대여하고 난 한걸음에 달려갔지. 이모의 병실 문턱은 성스러워 내 그림자는 넘지 못했어. 이모는 아직 나를 감싸는 차가운 공기에 이불을 끌어올렸지만, 누리끼리한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어. 아,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지. 이 미소를 보기 위해 내가 그간 힘들었었구나. 이 아름다움의 감동을 느끼라고 내게 시련을 주었구나. 이모,  곧 4월이야. 이모가 생을 연장하기 힘들 거라던, 마치 사형집행일 같이 느껴지던, 그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났어. 이모는 우리에게 기적이야. 완전한 좌절이면서 조심스러운 희망이구. 내일 열심히 필기하는 어느 시간에 이모는 수술실에 들어갈 테지. 이모, 조금만 힘내자. 아마도 함께 벚꽃나무 길을 걸을 수는 없겠지만 내년 꽃놀이를 기약할 수 있게 되자. 침침한 병원에서라도 괜찮으니 이모가 좋아하는 고구마 케잌을 사서 육십 몇 개의 초를 꼽자. 그리고 나와 이모의 합동 생일파티를 하는 거야. 환자복을 입은 후부터 우리는 내일을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웠잖아. 이제는 다음주, 다음달, 내후년, 함께 미래를 꿈꾸고 이야기하자. 알았지? 내일가면 내게 대답해줘. 아마도 호스를 물고 있을 테니 기우는 초승달 모양이라도 좋으니까 살짝 웃어줘. 그것만으로 나는 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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