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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Aug 16. 2019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지만 (2)

면허는 70%의 노력과 30%의 감각을 요구한다: 좌충우돌 면허취득기

          

 겸손하게 말해 저는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닙니다. 학창시절에는 아이큐 검사에서 전교 2위를 했고(증빙자료 없음), 성적도 상위권이었으니까요. 수학과 과학 공부는 고역이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했구요. 대학교에서도 경제학입문을 재수강한 것 빼고는(재수강해도 B+를 받았..) 학과 성적이 좋아 우등상을 받고 졸업을 했습니다. 제가 두뇌가 비상한 ‘천재’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대신 성실하고 끈질긴 성격과 완벽을 추구하는 기질 덕분에 대부분의 목표를 이루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겸손한 척 자랑할 거 다 했음)


 그래서 당연하게도 면허 첫 단계인 학과시험은 쉽게 통과했어요. 이론 공부에는 빠삭하니까요. 그러나 곧장 면허학원에 등록하지 않았어요. 사실 그날 시험에 합격하고 기고만장해서 시험장의 시뮬레이션 운전을 해봤거든요. 시동 키는데 두 번 실패하고 한참 출발을 못하다가 용기내 밟은 악셀로 외벽 철장을 박았답니다. 학과 시험을 통과해도 아직 운전을 시작할 그릇이 아니란 걸 깨달았죠. 심히 충격을 받고 저의 학과시험 합격증은 거의 1년간 묵게 되버립니다. 







학과시험을 봤던 서부운전면허 시험장. 그리고 문제의 시뮬레이터카 체험. 어쩌면 내 미래를 정확히 예견한 시뮬레이션이었는지 몰라.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이후 이사 온 동네에 운전면허학원이 있었고, 면허를 딸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도 많아졌어요. 게다가 학과시험 합격의 유효기간(1년!)이 거의 다되었기 때문에 더는 미룰 수 없었습니다. 큰맘 먹고 학원에 등록을 했습니다. 무난한 2종 자동으로요. 학과시험 합격자에게도 의무로 부과되는 학과수업을 수료하고 장내 기능을 받았죠. 4시간 교육을 이틀에 걸쳐 받았어요. 강사는 임의로 배정되는데, 저는 전혀 다른 타입의 강사님들을 만났어요. 첫날 강사님은 마치 이론수업처럼 원리에 기반해 설명한 반면, 둘째날 강사님은 ""을 강조하셨습니다. 저에게는 감각을 설명하는 그 분의 말들이 시처럼 느껴지긴 했지만요. 


운전은 말입니다, 머리로 하는 게 아니예요.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이며) 이 손 끝으로 하는 거예요. 차는 머릿 속으로 계산할 시간을 주지 않아요. 머리보다 손이 먼저 핸들을! 발이 브레이크를! 컨트로~올 해야는 거죠. 차가 쭈-욱 나가는 느낌, 핸들이 부드럽게 돌아가는 느낌, 이 얼마나 좋습니까! 원생분은 이 느낌을 기억하세요. 이 느낌 고대로 가져가서 한방에 통과지 뭐!




 사실 교육을 받는 내내 쉽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요. 회전도 어렵고 속력을 내는 것도 무섭고 게다가 T자 주차는 끔찍히 싫었고요. 그렇지만 익숙해지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육을 받은 장내 코스에서 시험을 본다는 큰 이점이 있었으니까요. 시인 같은 강사님은 저에게 자신감을 갖고 시험을 보면 충분히 합격할 거라고 북돋아주셨어요. 신중한 타입이라 조심스러운 나머지 망설이고 주저하는 감이 있는데, 시험에서는 당당하고 여유있게 쭉- 나가라고 조언해주셨죠. 




 이튿날 시험을 치르는 저는 강사님의 조언을 되새기며 긴장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그게 독이 될 줄은 몰랐죠. 채점기의 안내 방송을 따라 저는 시동을 걸고 안정되게 출발했어요. 긴급상황에 급제동도 잘 걸었고, 신호도 잘 지키며 교차로를 지났죠. 그리고 앞으로 남은 T자 주차만 잘 하면 무난하게 합격하겠다는 기분 좋은 예감을 느끼며 여유롭게 회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장내에 사이렌이 울리며 멈추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어요. 안전요원 두 명이 제 차로 급히 달려왔죠. 그때까지도 저는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요원은 차에서 내리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그제야 장내 안내 방송의 멘트가 들리더군요. 


 15번 차량 중앙선을 침범하였습니다. 실격입니다. 

 


 저는 문을 열며 요원께 물었습니다. 어렵게 느끼던 회전을 원활하게 하고 있다고 느끼며 뿌듯해하고 있었거든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많이 벗어났나요?”

 “많이 벗어났냐고요?”


 요원은 황당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어요. 이건 거의 역주행이예요, 아가씨.”

 


 차에서 내리니 발 아래 중앙선은 보이지 않더군요. 아.. 시험장을 가로질러 퇴장할 때 느꼈던 자괴감은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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