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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Dec 01. 2019

이질적인 감각의 체험 <레인룸>

빗속에서도 젖지 않는 100평방 미터의 공간, 10분의 경험

  전시실 문이 열리고 어둠 속으로 난 좁은 복도를 지나면 그때부터 축축한 냄새와 습도가 느껴집니다. 복도의 끝에 100 평방미터의 방이 있습니다. 천장에서는 굵은 빗줄기가 떨어집니다. 빗줄기는 촘촘해서 시야를 가리고, 세찬 빗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입니다. 네, 이곳이 단 10분의 관람이 허용되는 <레인룸(Rain room)> 입니다. 


 모두가 불안 속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저는 먼저 그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천천히 빗 속으로 몸을 밀어넣습니다. 처음에는 앞으로 쭉 뻗은 손 끝에, 코 끝에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지지만 이내 제 위로 내리는 비가 멎습니다. 사방은 여전히 거센 비가 한창인데, 그 한가운데에서 저는 젖지 않습니다. 처음입니다, 이런 경험은요. 단순히 젖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머, 비를 인지하는 몸의 감각들이 익숙해진 방식에 위반하는 형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몸은 여전히 비에 맞아 젖을 것을 예상하는 것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랜덤 인터네셔널(RANDOM INTERNATIONAL)’ 의 작품입니다. 런던과 베를린을 기반하여 활동 중인 이들은 고도로 발전하는 기술사회에서 인간의 존재조건을 사유합니다. 첨단 기술과 결합한 체험형(혹은 반응형) 작품을 통해 우리의 의식, 지각, 본능 등의 관념을 새롭게 체험하게끔 하지요. 2012년 처음 선보인 <레인룸>은 이들의 대표작으로, 관람객들의 존재에  ‘비’라는 물리적인 조건이 반응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관람객은 압축되고 밀폐된 공간에서 강렬한 빗소리와 냄새 등에 노출되지만, 촉감은 부재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전시는 기존의 직관에 반하는 체험으로 환경과 세계에 반응하는 우리의 감각에 질문을 던지는 셈입니다.


 이질적인 감각의 경험과 더불어 저에게는 또다른 흥미로운 설정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레인룸>의 중앙등입니다. 비가 올 때 젖지 않는 경험도 낯선 것이지만 비가 오는 하늘에 둥근 해의 형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일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둠 속 촘촘하고 거센 빗줄기들이 빛을 적선 받아 비로소 시각에 포착되지요. 이때 중앙등의 빛은 마치 태양처럼, 신처럼, 그 공간과 체험 모두를 관장하고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그 빛에 조금 더 많이 의지하기 위해 중앙등 앞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사뭇 신성함도 느껴졌고요. 




폰의 화질이 따라잡지 못해 슬프네요. 사실 체험형 전시는 한장의 이미지로는 포착될 수 없는 요소들이 더 많아요. 체험형 전시는 그래서 직접 경험해보는게 좋죠.




 단 10분만 허락된 이 전시를 허무하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체험을 한다는 의미에서 전 관람을 추천하고 싶어요. 런던 바비칸 센터(2012), 뉴욕 현대 미술관(2013), 상하이 유즈 미술관(2015, 2018-2019), LA 카운티 미술관(2015-2017), 샤르자미술관(2018), 호주 무빙 이미지 센터 아트 컬렉션(2019)에 이어 부산현대미술관에서 특별기획전으로 진행중인 <레인룸>은 <알고리드믹 스왐 스터디(Algorithmic Swarm Study)> 영상작품과 함께 2020년 1월 27일까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사전 온라인 예매 필수입니다! 아래 링크 참고) 참, 이들의 또다른 전시 <피지컬 알고리즘(Physical Algorithm)>전이 인천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에서 진행 중이라고 하니 가볼 생각 입니다. 






*부산현대미술관 <레인룸> 소개: 


*하나투어 전시예매: http://ticket.hanatour.com/Pages/Perf/Detail/Detail.aspx?IdPerf=37046#tab6

*<피지컬 알고리즘> 소개: https://www.p-city.com/front/artSpace/overview

*랜덤 인터네셔널 사이트: https://www.random-internatio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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