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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Dec 11. 2019

<영화로운 나날>이 상기하는 소중한 것의 가치

영화’같고’ 영화’로운’ 경험의 이유



<영화로운 나날>이란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영화로운’의 의미가 바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영화로운이란 영화롭다(귀하게 되어 세상이 빛날 만하다)라는 뜻의 형용사를 쓴 것일까? 아니면 어떠한 성질이 있다는 뜻을 가진 ‘-스럽다’ 접미사가 영화에 붙어 영화같다는 의미일까? 이 궁금증은 영화가 시작할 때 더 증폭되었는데, 그 이유는 판타지한 나날을 맞이하는 남자주인공의 이름마저도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영화배우 지망생이지만 단역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특출난 연기 실력을 가진 게 아니어서 오디션에도 번번히 떨어지죠. 함께 사는 여자친구 아현과는 여전히 사랑하지만, 돈, 친구, 미래, 배려 같은 사소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크고 작은 갈등을 만들어내죠. <영화로운 나날>은 여자친구와의 싸움이 커져 집에서 쫓겨난 날, 우연의 우연으로 신비한 여정을 겪는 영화의 하루를 담고 있습니다.



 오랜 인연 석호형을 우연히 만나 별안간 그가 되어버리거나, 졸고 있던 버스에서 친누나를 만나질 않나, 누나에게 이끌려 내려간 장례식장에서는 할머니 혼령과 춤을 추고, 단편 영화 단역을 부탁받고 즉석연기를 펼치며 옛날 스탭과 조우하게 되는- 비현실적인 에피소드가 영화에서는 요란스럽지 않게, 마치 일상처럼 천연덕스럽게 이어집니다.


뮤직비디오 등 압축적인 영상 작업을 많이 하신 이상덕 감독. 그래서인지 영화의 전체적인 색감과 구도가 참 맘에 들었다. 영화의 전체 결에 호응하는 안정적이고 소박하면서 따뜻한 장면


  이 영화에서 가장 낭만적이었던 별자리였어요. 아현과 싸우기 전 방문한 천문대에서 천장 위 공존하는 별자리를 보며 영화가 말합니다.


별자리의 본질은 그대로인데 계속 움직이는 거네. 그런게 진짜 중요한데.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빈번히 일어나며 삶을 다이내믹하게 만들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지속됩니다. 잠을 자고 끼니에 밥을 챙겨먹고 돈을 벌기 위한 경제활동과 그렇게 번 돈을 써야만하는 소비들이 견고한 일상을 이루고 있죠. 이러한 일상적 행위들은 익숙해지고 당연하게 생각되면서 소홀해지기 십상입니다. 내 곁에 가장 가까운 이들의 소중함을 잊고 무심한 나머지 상처를 주는 것처럼요. 아현과의 함께임이 너무 자연스러워진 나머지 그녀의 상황과 감정을 배려하지 못한 영화. 그 댓가로 집에서 쫓겨난 영화에게 일어나는 환타지 같은 일들은 일상의 평범함이 주는 안정과 행복을 일깨우는 영화’같고’ 영화’로운’ 경험일 것입니다.








일탈적인 경험을 마치고 영화는 다시 아현이 있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전에는 알량한 자존심때만 좀처럼 나오지 않았던 사과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죠. 온갖 변화들의 중심에서 변하지 않는 중심축으로 남아주는 일상, 그리고 아현의 존재. 그는 변함없이 자신을 수호해주고 있던 것들이 앞으로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스스로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아주 조금 변합니다. ‘때때로 혼자 있지만 그대로 너와 같이 있는 것’이란 영화 포스터의 문구처럼 ‘계속해서 함께’이기 위해 중요한 건 무엇인지 영화(이 영화 자체와 이 영화 속 영화라는 주인공 모두)는 말하는 것 같아요.  






(대사 정확하지 않음 주의)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말한다는 아현의 지적을 기억하며, 영호가 계속해서 몸을 낮추며 결국 아현의 품에 눕게 되는 장면은 (외로운) 내게 최애!



다시 일상의 평화를 찾고 사랑의 관계에 돌아온 그들이 대수롭지 않은 각자의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꼼냥꼼냥 거리는 장면은 외로운 마음을 꿈틀거리게 했습니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무언가가 인생에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어요. ‘나는 조금 확장된 것 같아, 별자리처럼.’ 영화의 말처럼 영화’같고’ 영화’로운’ 체험의 가치는 어쩌면 소중한 것의 잊고 있던 소중함을 되새기는 데 있는게 아닐까 합니다. 모험 끝에 돌아온 영화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조금은 확장된 영화처럼.  






<영화로운 나날> 


개봉 2019.12.12

개요 멜로/로맨스, 판타지, 드라마

상영시간 87분

감독 이상덕

출연 조현철, 김아현, 권석호, 서영화, 이태경 등

보통의 ‘영화’가 특별한 ‘아현’을 떠난 날, 우연하고 기묘하게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며 펼쳐지는 어쩐지 마법 같은 어드벤처 로맨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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