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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r 22. 2020

용기내어 고백합니다. 그리고 청원합니다.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공개에 대한 청원에 서명한 이유

 오늘 이 세상에서 단 세명만이 알고 있는 일을 이야기하려 한다. 어쩌면 세명이 아니라 두명일 수도 있겠다. 나는 여태 그 한사람이 죽기를 바래왔으니까.


 그런 무서운 염원을 줄곧 품어왔던 만큼, 이 글을 쓰기까지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해는 진작 졌고 시외버스는 시커먼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종점에 가까워질 무렵 그 버스에는 운전석 뒤 두번째 줄에 앉은 나와 버스 앞문 바로 앞에 앉은 노인만이 남아있었다. 버스운전사는 가까이 앉은 우리에게 말을 건넸는데, 나는 주로 단답으로 대답했고 노인은 새로운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서귀포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노인은 내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청했다. 딸 같고 손녀 같아서 한끼를 사주고 싶다는 거였다. 그는 행색이 볼품없거나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았다. 초면인 운전기사와 버스 안에서 나눈 대화에서 나는 그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나는 주말마다 나의 방문을 기다리는 할아버지댁에 가는 길이었다. 그러니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그의 고독이 맘에 좀 배겼다. 그래서 우리는 터미널 바로 옆 기사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는 낙지볶음 2인분을 시켰다.


 식사를 마치고 공손히 인사를 드린 뒤 돌아서는 나를 노인이 불러세웠다. 식당의 불빛이 비치지 않는 골목의 담벼락으로 붙어 서서 그는 쭈뼛거렸다.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다고 했다. 나는 시간이 너무 늦어져 할아버지가 걱정할 거라고 빨리 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네 가슴을 한번 만지면 안되겠니?”



나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머리 속이 새하얘졌다. 그때 내가 어떻게 그 상황을 빠져나왔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를 밀쳐내진 않았을 테고 아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큰길로 달려나와 택시를 잡았을 것이다. 택시를 타고 할어버지댁 주소를 댄 뒤 울었던 장면부터 기억에 있다. 택시기사의 걱정어린 물음에 아랑곳 없이 나의 작은 몸은 한없이 떨고 있었다.




그때 나는 고작 13살이었다. 패드 없는 얇은 스포츠 브라를 엄마에게 선물 받은 지 얼마 안된, 초경을 막 시작한 13살의 여자 아이.




 그날 밤 할아버지댁 담벼락에서 눈물자욱을 지우고 들어갔다. 이모한테 처음으로 등짝을 맞았다. 할아버지도 고함을 치셨다. 어린 아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밤늦게 왔다고. 출발이 늦어지면 다음날 출발하든가, 늦으면 늦는다고 미리 연락을 하라고 호되게 혼이 났다. 야단을 맞으면서도 나는 내가 당한 일을 고백하지 못했다. 그때 일어난 일은 내게 너무나 충격적이고 거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사건은 내게 여자로서의 수치심으로 변형됐고 더욱더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과거였고, 표면적으로는 어떠한 신체적 행위가 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스런 위험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나조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건으로 치부하려 했다. 그렇게 노력했다. 그러나 그 아집으로 단단히 잠가 놓은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히면 그것은 결코 아무렇지 않은 기억이 될 수 없는 생생한 공포로 내 안에 놓여 있었다.  


 난 그후로 낙지를 먹지 못했다. 십여년이 지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신뢰하게 된 사람에게 이 일을 처음으로 털어놨다. 그때만 해도 차분하고 담담하게 고백했다. 내 이야기를 듣는 그가 오히려 흥분해서 술잔을 쏟고 그 노인을 저주했다. 그때.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울음을 터트렸다. 그가 상스러운 욕으로 그를 욕보이면서, 내가 오랫동안 부정했던 내 안의 분노와 원망, 비참 같은 것이 괜찮은 것임을, 정상인 것임을 에둘러 알려준 것이었다. 어째서 겁없이 모르는 이와 말을 섞고 식사를 같이 했느냐, 같은 질타는 사실 내가 두려워한 또다른 폭력이었다. 피해자가 사건이 일어나는데 어느 정도의 원인 제공을 했다는 비난은 생산적이지 않지만 피해의 고백이 일어날 때 가장 전형적인 반응이다. 이 전형성이 지금 우리 사회의 편파적이고 폭력적인 인식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적어도 행운아였다. 내겐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 있었고 다정한 친구들이 있었으며, 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아늑한 환경이 있었다. 그래서 그 끔찍한 순간을 고백하지 않고서도 나는 그 상처에 나름대로 대처할 수 있었다. 절대 혼자 이뤄낼 수 있는 극복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가 운이 좋은 건 아니다. 건강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행운은 드문 것이다. 어리고 약하고 소외 당한 이들일수록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고 그런 일을 당해도 도움을 청할 곳조차 없다. 특히 성범죄는 아이들의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피해를 당한 아이들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런 그들이 스스로 먼저 고백할 수 있을까? 설사 그것이 범죄임을 안다고 할지라도 용기 내어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내가 그 일을 수치심으로 내면화한 것처럼, 내가 당한 일을 고백할 수 없게끔 하는 보이지 않는 억압들이 너무 많다. 지금 우리 곁에도 많은 이들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감히 입을 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반면에 가해자에게 이 세상은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빈틈이 많다. 범죄의 입증과 호소가 피해자의 몫으로 배당되면서 그들에게 부여되는 책임과 처벌의 무게는 너무나 가벼웠다. 두려움을 느껴야 할 법의 그물망도 그들에겐 느슨하다. 그게 곧 범죄에 대해 태만한 감수성으로 이어진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나는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공개에 대한 청원에 서명했다. 그날 밤, 내가 서있던 터미널 공터의 담벼락처럼 어둠 속에서, 음지 속에서 약한 이들을 착취하는 이들이 있다. 그 으슥하고 더러운 곳을 파헤치려는 노력이 없는 한, 범죄는 어디서건 계속될 것이다. 수많은 지지와 연대 속에 용기 내어 자신의 피해를 말하는 피해자가 늘어났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경험한 고통스런 증언의 언어들로 성범죄가 재단되는 경향이 싫다. 숱한 폭력들이 그자체로 부각되지 않고 수난과 비극의 서사들로 우회하여 드러나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 사회는 피해에의 이입보다 가해에 대한 감각을 더 선명하게 할 시기이다.  이번 청원은 성범죄의 악순환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된다. 부디 한걸음의 진전이 가능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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