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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Apr 07. 2020

다큐멘터리 연극이란?


 다큐멘터리 연극은 공식 문서, 사진, 증언 등의 자료를 기반으로 역사적 혹은 동시대적 사건들을 다루는 형식의 연극을 통칭합니다. 각 작품이 지향하는 바나 구성, 연출 방식에 따라 상이한 분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다큐멘터리 연극이라고 규정되는 장르는 1920년대 독일 에르빈 피스카 토르(Erwin Piscator)에 의해 발전합니다. 이 때의 연극은 실증적 자료들에 근거하여 사건을 재구성하되,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을 고취시키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관객들이 현실 인식과 정치적 각성을 할 수 있도록 사실적 자료들을 소재로 연극의 기법 안에서 효과적으로 ’몽타주’ 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서는 작품에서의 모방과 재현의 문제보다 작품이 갖는 계몽적 측면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한편, 1960년대 페터 바이스(Peter Weiss)는 다큐멘터리 연극에서 픽션의 측면을 포기하면서 기록극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합니다. 앞선 다큐멘터리가 정치적인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사실을 재구성하는 픽션을 허용했다면, 이 경향에서는 편집과 극적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하게 됩니다. 연극이 상상과 해석에 의해 서사를 재창조하는 작업이 아니라 사건을 객관화하는 역사기술을 지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출가는 사건을 중립적으로 관찰하고 내용적이고 형식적인 면에서 날 것 그대로의 현실 모사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죠. 하형주 평론가는 초기의 다큐멘터리 연극을 역사 다큐멘터리로, 2차 부흥기의 다큐멘터리 연극을 네오-다큐멘터리로 구분합니다.




13회 서울변방연극제 개막작으로 초연된 연극 <숙자이야기>(좌)와 뮤지컬 <그대 있는 곳까지>(우) (사진출처: 경향신문, 국민일보/제공:행복공장,햇살사회복지회)

 



 그러나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성적 사유는 연극의 당연시 되어온 전제들을 문제 삼게 됩니다. 모더니즘 속 객관성과 실증주의가 기반하던 합리성이 공격받으면서 다큐멘터리 연극은 다시 탈바꿈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역사서술에서 소외되었던 자들의 서사를 구축하려는 방향성을 띄게 되고, 배우/관객, 무대/객석 등의 이분법적 구분을 깨는 실험적인 시도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다큐멘터리 연극 또한 사실과 허구, 현실과 픽션이라는 대립적 구도를 스스로 문제 삼게 되고 해석에 있어서도 열린 상태를 추구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뚫고 나아가는 다큐멘터리 연극을 오늘날 포스트-다큐멘터리로 명명됩니다.  


 포스트-다큐멘터리의 시도는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철저한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서 개인의 생애사나 사건의 진실을 구성하는 연극에서는 플롯이나 연기에만 의존하지 않고 실제 자료를 직접 활용합니다. 가령 당사자의 인터뷰를 녹화한 영상이나 음성을 쓰거나 혹은 배우들이 그들의 말을 그대로 재연하는 '버바팀'(Verbatim) 형식도 발전했습니다. 또는 실제 사건의 당사자들로 배우를 구성하여 올리는 연극도 존재합니다.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던 소수자, 트라우마를 겪고 있던 피해자 등이 참여할 때 연극은 이들의 자기 치유를 꾀할 수 있는 폭넓은 장이 됩니다. 알려지지 않은 사건에 접근하기 위해 각각의 연극들이 택하는 전략은 상이하겠지만, 이러한 다큐멘터리 연극이 지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사건들에 적극적으로 연루되는 ‘우리’일 것입니다. 여태껏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전형적인 사고의 틀로는 포착되지 못하거나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면면들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연극은 참신한 시도를 통해 우리의 인식과 경험의 한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진실에 다가가게 합니다.     



 연극 <숙자이야기>는 경기 평택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다룬 창작극입니다. 실제 12명의 할머니들과 공동창작으로 탄생한 이 연극은 이들의 실제 생애사를 바탕으로 대본을 구성했고, 할머니들은 직접 배우로 참여해 무대에 섰습니다. 기지촌에 흘러들어 살아냈던 힘든 과거의 기억뿐만 아니라 여전히 그곳 변두리에서 삶을 이어가야 하는 현재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들의 생생한 체험과 언어, 감정에 다가서게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으며 존재를 드러낼 수 없었던 이들이 연극의 장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또한 기지촌을 둘러싼 국가의 통치,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배척, 사회적 안정망의 사각지대 등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들의 고통과 고민을 나눠갖는 우리로부터 할머니들은 새로운 힘을 얻게 되고요. 


무더위 속 막바지 연습은 9월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그대 있는 곳까지>(연출·구성 이양구, 음악 유성숙) 준비를 위해서다. 공연의 주인공들은 1960~80년대 평택 미군기지촌에 살았던 미군 ‘위안부’ 여성들. 극심한 가난 속 생계를 위해, 직업소개소에 속거나 또는 인신매매로 미군 대상 성매매로 내몰리며 ‘양공주’라는 사회적 멸시에 숨죽여 살았던 할머니들이 자신의 삶을 무대 위에서 이야기한다.  (중략) 기지촌 여성들의 합창단 지휘부터 시작해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이들과 연을 맺고 있는 유성숙 감독은 “사회적 멸시로 가족이나 이웃과 연을 끊고 홀로 지내던 할머니들이 노래와 공연을 통해 점점 집밖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세상과 조금씩 관계맺기를 해나가는 과정이 있었다”면서 “그동안 어디서 말하지 못하고 가슴속에만 묵혀 왔던 본인 인생의 이야기를 공연을 통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전했다. 


 *기사원문

기존 연극의 제한적인 문법들이 붕괴되고 동시대의 문제들에 접근하려는 창조적인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연극은 고유의 영역을 계속해서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그 선두에는 예술을 통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려는 다큐멘터리 연극의 정신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관련해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옮긴 극작가의 에세이를 읽어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참고

하형주. (2015). 다큐멘터리 연극(le theatre documentaire)과 포스트 - 다큐멘터리 연극(le theatre post-documentaire)에 관한 소고. 공연과이론, (59), 110-118.

임인자. (2010). 기획특집 : 지금여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질문과 수행으로서의 동시대 연출가들의 새로운 소통 방식연극평론, 59(0),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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