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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y 08. 2020

이태원의 과거를 기억하고 이태원의 오늘을 사는 여성들

삼숙, 나키, 영화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큐 <이태원>

 방역차가 내뿜는 연기로 이태원 뒷골목의 풍경이 가려집니다. 희뿌연 연기로 가득찬 프레임 한쪽에서 코를 막은 여성이 튀어나옵니다. 다른 풍경들처럼 가려지지 않겠다는 듯 버티고 서서 먼 곳을 바라봅니다. ‘소독’과 ‘청결’을 위해 살포하는 연막은 마치 국가가 이태원이란 지역을 조성하고 관리했던 정치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연막을 불쑥 뚫고 나오는 여성은, 그런 의미에서 국가정치에 대항하는 존재일 것입니다. 이 다큐에는 그렇게 담대한 세 여성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지워지고 잊혀지려는 역사 안에 새기려는 다큐의 시도 자체도 또 다른 저항이겠죠. 연기 위로 제목 ‘이태원’이 새겨집니다.




<이태원>의 인물포스터-삼숙과 나키, 영화. 포스터의 인용구와 전반적인 분위기가 보여주듯 그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녔고 매력이 넘칩니다.  



 ‘이태원 대장부’로 불리우는 삼숙은 40년 넘게 미군 전용 컨트리클럽인 그랜드 올 아프리(Grand Ole Opry)를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30대에 미군 전용 클럽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기 시작해 여전히 이태원에서 근근이 주방일을 하며 살고 있는 나키. 클럽에서 일하다 미군과의 결혼으로 미국에 갔지만 얼마 못 가 이혼하고 돌아와, 지금은 조카를 돌보며 이태원을 떠날 수 없는 영화. <이태원>은 미군기지로 부흥했던 이태원 유흥산업에 한때 종사했으며, 저마다의 이유로 여전히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세 명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나 이들을 통칭하는 ‘기지촌 여성’의 전형성을 재현하는데 이들을 동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감독은 이들의 지금과 이들이 말하고 싶어하는 서사를 통해 지금-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주체성’을 보여줍니다.  


 가령 위안부 문제나 성범죄 등을 다룬 극영화, 다큐에서 줄곧 문제시되어왔던 것은 피해자들을 작품 안에서 재현해내는 윤리적 문제였습니다. 피해 장면을 과도하게 자극적으로 보여준다거나, 비참하고 비극적인 피해자로 단순하게 그려낸다거나 하는 식은 그들을 평면적으로 해석한 결과이며 사람들에게도 왜곡된 관념을 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유가람 감독은 촬영 전까지만 해도 그녀 역시 ‘기지촌 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과 편견을 갖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가까이서 그녀들과 함께 하면서 모두 깨져버렸다고 해요. 다큐의 기존 구성안을 주저없이 버리면서 감독이 끝까지 고민했던 것은 고정되고 단일한 정체성으로는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그녀들의 다채로운 삶의 경험들을 가급적 두껍게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말 한마디, 감정 표현 하나에 놓여있는 여러 겹의 맥락들을 구조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편집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해요.


 ‘이태원’은 오늘날 글로벌한 다양성이 공존하고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흥미로운 공간으로 자리잡기 전까지 우리 사회 내부의 이방인들을 격리시키는 배타적인 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기지 주변의 상권이 형성되고 각종 규제의 특혜를 내리면서까지 외화벌이를 활성화시켰죠. 그 중에는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양갈보’, ‘양색시’, ‘양부인’ 등의 혐오와 멸시가 섞인 이름으로 불려졌습니다. 국가경제의 논리와는 별개로 도덕적인 평가와 낙인을 그들에게 찍은 것인데, 거기에는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에 대한 증오 외에도 미군, 서양에 대한 적대가 섞여 있었죠. 이태원 기지촌이 타락의 온상으로 표상되면서, 서울의 나머지는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안전하고 청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이들이 일터로 선택해 지금까지 살아온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현재 재개발 문제가 가장 예민한 이슈입니다. 감독이 이태원이란 공간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여기에 있었고요.




 기지촌과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지워졌습니다. 가시화되지 않은 영역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선 피상적인 이해나 편견에 머물러 있었죠. 그러나 일련의 인류학, 여성학 연구들이 ‘기지촌 여성’의 경험과 삶을 재조명하면서 이들의 존재를 공론화 장으로 끌어올렸습니다. 특히 그녀들을 ‘성매매 여성’이나 ‘피해자’ 등 단순하고 평면적인 정체성으로 규정하지 않고, 사회, 경제, 문화적인 조건들에 구속된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합니다. 한계와 제약 안에서 때론 수용하고 때론 저항하면서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낸 행위자들로 이들의 말을 들으려 하죠. 단순한 말 한마디도 그 사람의 전생애를 알고나면 다른 차원으로 해석이 되곤 합니다. 일상의 경험에서 이해를 시작하는 것은 한 사람이 놓인 다양한 사회적 조건들을 바라보게 하고 또 그 조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벌이는 구체적인 노력들을 관찰할 수 있게 하죠. 그렇게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는 것입니다.  


 다큐 <이태원>은 그런 의미에서 세 여성과 신중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따뜻하고 섬세한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삼숙, 나키, 영화 모두 기지촌에서 일했던 일화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과거보다 더 중시되는 건 오늘을 사는 그들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안부를 묻는 이가 없다며 외로워 하기도 하고 쪼들리는 생활비에 분노하기도 하지만, 골목 어귀에 앉아 이웃들과 나물을 다듬고 싸게 산 과일에 잔뜩 신이 나기도 합니다. 다큐를 통해 우리는 가장 생생한 삶의 체험으로부터 그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기지촌 여성’에 ‘관념과 지식’을 통해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일상과 감정’으로 나와 근접한 거리에서 이해해 나가는 방식이죠. 나키가 ‘누구나 자기를 인정하는 자리에 있고 싶어 하는거야’라고 했던 말처럼, 감독은 그들을 그들 자체로 인정해줄 수 있는 공간을 우리와 그들에게 마련해준 것만 같습니다.



**이 글은 2020년 5월 2일 을지공간에서 열린 <이태원> 상영회와 강유가람 감독과의 GV를 토대로 썼습니다.

코로나19사태로 주상영관이었던 KT&G 상상마당이 휴관하면서 이 다큐를 볼 기회가 없어졌는데요, 영화관이 재개관하면 다시 상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빠른 시일 내에 반가운 상영소식을 들을 수 있길 기대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이 흥미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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