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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l 28. 2020

06-역사가 '기억'되는 계기

지금의 내가 과거의 시간과 강렬하게 만나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기억하지 않으면 잘못된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은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빈번히 인용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육은 죽은 지식으로 역사를 암기하는 형태다. 나는 엄연히 ‘기억’과 ‘암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기억은 암기보다 통합적인 실천에 가깝다. 그건 내 삶과 연관된 중요한 문제로서 역사를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과거의 일들이 현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미래로까지 이어진다는 실감을 요구하는 것이다. 기억의 대상은 신념을 형성하고 판단과 결정을 내릴 때 유의미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나의 경험 너머의 타인들, 이전 세대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실천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사회적 차원에서도 중요할 수 밖에 없는 거다. 



 단순 암기가 아닌 기억으로 역사를 자신 안에 담아두기 위해서는 한 존재가 그 사건과 강하게 충돌하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억해야한다’는 당위의 명령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정말로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여길 수 있어야만 ‘암기’가 아닌 ‘기억’의 차원으로 넘어올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역사를 자신의 기억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고백하면 나 또한 역사를 암기하는 범생이였다. 내가 외우고 있던 수많은 사건들과 연도, 인물들은 과거에 대한 지식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것들은 현재의 나와 단절되어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과거일 뿐이었다.  



 그러나 여행은 이러한 나 자신을 반성하고 달라지게 했다. 여행에서 나는 처음으로 희생된 망자들의 고통을 내 상처인 마냥 느꼈고 (물론 절대 같을 수 없겠지만) 빈약한 상상력으로 과거의 비극을 헤아리려고 시도했으니까. 그러한 고통의 여정을 통해 누군가는 ‘그게 지금 네게 왜 중요해?’라고 딴지를 걸 수 있는 역사를 내게 가장 심각한 문제처럼 안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 변화의 계기는 강의나 책에서 역사를 지식처럼 흡수했던 형태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설명할 수 없는 느낌들로 마음이 헤집어지는 식으로 나를 흔들었다.  



 긴장감으로 손에 땀이 나고 입 안에 침이 바싹바싹 말랐다. 습한 더위에도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고 얻어맞은 것처럼 온몸이 저릿했다. 물론 수용소 전반에 감도는 암울함이 압도적인 까닭도 있었겠지만, 학살과 희생의 터로 남아있는 공간과 그 공간에 함께 있던 묵념하거나 침묵했던 추모자들. 그 모든 요소들이 정서적이면서도 신체적인 효과를 만들어냈고 각자의 존재에 강렬한 강도로 역사의 기억을 아로새기고 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한 체감. 시간적, 공간적 간극을 뛰어넘어 과거의 순간이 지금의 나와 기적적으로 만나는 계기가 생겨날 때. 그 만남이 정확한 언어로 설명되기보다는 나조차 납득할 수 없고 이해되지 않는 기이한 감응으로 날 덮을 때. 나는 그 순간이 나와 타인이, 내 안과 내 밖이 연결되는 찰나刹那라고 생각한다.



 사적 경험에 제한되어 있는 기억의 영역을 낯선 타자에게로, 오랜된 역사로, 전지국적 차원의 사건들로 확장시키기 위해 중요한 건 무엇일까. 나는 그 희박한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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