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Jul 26. 2020

05-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

퇴사와 배낭여행, 그렇게 마주한 질문들

 내가 직장을 그만둔 건 2016년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으니 당시 5년 정도의 경력을 쌓았을 때였다. 몇번의 이직을 했지만 나는 줄곧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이벤트와 페스티벌을 만드는 일을 해왔다. 나의 포지션은 아이디어 기획부터 홍보마케팅, 영업과 운영까지를 모두 포괄했다. 낮은 연차에도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을 시작한 데에는 회사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부담이 되지 않을리 없었지만 거칠고 고된 강도에도 최선을 다했던 이유는 힘듦을 상쇄해줄 만큼의 즐거움과 보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기보다 현장에서 일을 진두지휘할 때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긴장이 좋았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들에서 감동을 느끼고 행복해하는 참여자들을 볼 때면. 




 그러나 일과 일상의 균형이 한번 틀어지기 시작하자 몸과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게다가 회사가 취약한 나의 상황을 배려해주지 않고 더 이상 나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나는 그 회사에 남아 일을 계속 할 수 없었다.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던 커리어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나는 인생에 쉼표를 찍기로 했다. 이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사표를 냈다. 동료들은 나의 선택이 무모하다고 했다. 그들은 경력의 공백은 마이너스 요소이고, 이직이 너무 잦으면 신뢰가 떨어지며, 회사는 30대 미혼 여성의 취업을 꺼려한다는 등의 걱정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말하는 불안에 동조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봄, 나는 홀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2개월 남짓한 여행의 행선지는 폴란드와 독일.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동유럽에서 폴란드는 인지도가 높지않았고 독일도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매력적인 여행지는 아니었으니까.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푹 쉴 수 있는 휴양지로 다녀오는 게 낫지 않냐는 조언도 많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퇴사는 나에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버거웠던 일에서 도망치는 단순한 도피가 아니었다. 회사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느낀 실망과 커리어에 대한 무력감을 극복하고 인생의 새로운 자극을 찾기 위한 모험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내겐 휴양이나 관광이 아닌 여행이 필요했다. 낯설고 불편한 경험 속에서 무뎌진 감각의 촉수를 곤두세우고 배움을 얻는 것. 그래서 그 여행은 인생의 버킷리스 중 하나였던 폴란드여야 했다. 더 정확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Auschwitz Concentration Camp]와 비르케나우 수용소[Birkenau Concentration Camp]를 찾아가는 일 말이다. 




 폴란드에서의 단 하루.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비르케나우 수용소를 방문했던 그날이 나를 바꿔놓았다. 인류 역사의 참혹한 비극이 남아있는, 흔적과도 같은 공간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고 몸이 경직됐고 눈물이 쏟아졌다. 머리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희생자들의 고통이 몸으로 전이되어 왔다. 뒤이어 방문한 독일의 베를린에서 유대인 학살 추모관[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Berlin]과 유대인 박물관[Berlin Judisches Museum]도 형언하기 어려운 감각의 형태로 내게 왔다. 그때 나는 역사와 기억, 고통과 공감, 흔적과 감각 같은 문제에 빠져들게 됐다. 한국에 돌아와 내 질문에 해답을 줄 만한 책들을 찾으며 나는 처음으로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와 썼던 글. 지금에 와서 읽어보니 감상에 치우진 엉성한 후기 같네요. 폴란드-독일 여행편을 다 기록하지 않은 저의 불성실함을 다시금 반성하게 됩니다.. 언젠간 그 기억들과 깨달음들을 모아 글을 완성해보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4-실존적 고민이라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