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이런저런 일상적 화제로 대화를 하다가 지난해 읽었던 최고의 책까지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책을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꼽는데 망설임이 없었어요. 인도 의 여류작가가 카스트제도의 가장 낮은 신분인 불가촉천민 가족과 여성이라는 '작은' 존재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사회역사적인 비판적 의식에 기반하고 있지만 비극의 현실을 응시하고 그려내는 감수성이 매우 섬세합니다. 서사를 직조해내는 방식이나 묘사, 문장 또한 아름답구요. 페이지를 접거나 밑줄을 그은 구절은 셀 수 없는데, 저는 이란성 쌍둥이 딸 '라헬'이 잘못을 저지른 후 어머니 '암무'와 나누는 대화를 가져왔습니다.
“라헬.” 암무가 말했다.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아니?”
겁에 질린 눈과 분수 머리가 암무를 쳐다봤다.
“괜찮다. 겁먹지 말고.” 암무가 말했다. “그냥 대답해봐. 아는 거니?”
“뭘요?” 라헬이 가능한 한 가장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지금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암무가 말했다.
겁에 질린 눈과 분수 머리가 암무를 쳐다봤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암무가 말했다. “네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면 사람들은 너를 조금 덜 사랑하게 된단다. 부주의한 말을 하면 그렇게 돼. 그런 말들이 사람들이 너를 지금보다 덜 사랑하게 하는 거야.”
유난히 등에 털이 빽빽한 차가운 나방 한 마리가 가볍게 라헬의 마음에 내려앉았다. 나방의 얼음 같은 다리가 닿자 소름이 돋았다. 라헬의 부주의한 마음에 여섯 개의 소름이 돋아났다.
라헬의 암무가 그녀를 조금 덜 사랑했다.
(중략)
“암무.” 라헬이 말했다. “벌로 저녁을 굶나요?”
라헬은 벌과 맞바꾸고 싶었다. 저녁을 굶고, 그 대신 암무가 예전과 똑같이 그녀를 사랑해주는 걸로.
“좋을 대로 해.” 암무가 말했다. “하지만 먹는 게 나을 게다. 키가 크고 싶다면 말이지. 어쩌면 차코의 닭을 좀 나눠 먹을 수도 있겠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차코가 말했다.
“그럼 제 벌은 어쩌고요?” 라헬이 말했다. “아직 벌을 안줬잖아요!”
“어떤 것들은 그 자체에 벌이 딸려 있지.” 베이비 코참마가 말했다. 라헬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계산에 대해 설명이라도 하듯이.
어떤 것들은 그 자체에 벌이 딸려 있다. 붙박이 옷장이 달린 침실처럼. 곧 그들 모두 그 벌에 관해 알게 될 것이다. 벌이 각기 다른 크기로 온다는 것을. 어떤 벌은 침실의 붙박이 옷장처럼 너무나 크다는 것을. 평생을 그 안에서, 어두운 선반 사이를 헤맬 수도 있다는 것을.
*아룬다티 로이, 박찬원 역, <작은 것들의 신>, 문학동네(2016), pp.159-163
라헬은 자신의 행동때문에 엄마가 자신을 덜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을 잃는 대신 벌을 받기를 원합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벌하지 않는 엄마로 인해 마음이 조급해질 때 고모인 베이비 코참마가 '그 자체에 벌이 딸려 있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 라헬은 그 말을 즉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 세계에서 '작은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그들이 극복할 수 없는 비극을 암시하는 듯 하죠. 그러나 작품 전체의 세계로 확장시켜 이 말의 뜻을 해석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했을 때, 그런 행위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장본인에게는 괴로운 벌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죄책감과 반성의 감정은 반드시 처벌에 의해 생겨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끔찍한 경우에는 내가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더라도 나의 존재 자체가 벌을 감당해야 할 운명인 경우이겠죠. 평생을 '어두운 선반' 속에서 헤매야 하는 무고한 작은 존재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쓸 수 있을까요.
*책정보
1969년 인도 케랄라 아예메넴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바뀐’ 한 가족의 비극을 섬세하게 다룬다. 아룬다티 로이는 『작은 것들의 신』에 대해 “이 소설은 나의 세상이며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또한 이 소설은 장소나 관습에 관한 것이 아니라 들과 땅과 공간에 관한 것이며, 어떤 특정한 사회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성, 아이, 파괴되는 자연 등 지구상의 작고 연약한 존재들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아룬다티 로이의 인간과 세상에 대한 시선, 그리고 문학의 본질에 대한 정수가 이 작품에 담겨 있다.
저자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는 1961년 인도의 메갈라야 실롱에서 태어났다. 1997년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수상하며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다. 1998년 「상상력의 종말」을 발표하며 사회운동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생존의 비용』 『권력의 정치학』 『전쟁 이야기』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 『제국 시대의 대중 권력』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등 인도 사회, 나아가 세계의 여러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명.
『작은 것들의 신』은 1997년 출간되어 뉴욕타임스 ‘1997년 주목할 만한 책’으로, 인디펜던트, 선데이타임스, 옵서버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출간 후 전 세계에서 4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돼 6백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출처:예스24, 출판사 서평 일부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