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다루는 시도에 놓인 애매한 경계
올해 5월 제주에 4∙3 트라우마센터가 개소했습니다. 트라우마센터는 제주 4∙3사건의 생존희생자와 유족들의 트라우마(Trauma)를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전문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일대일, 혹은 집단의 심리상담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예술 치유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요. 고령의 희생자와 유족이 많기 때문에 마음건강과 함께 신체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치료, 재활 시설과 프로그램도 갖추고 있고요. 제주도는 이 센터의 서비스를 받을 치유대상자를 1만 8500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센터 조사에 의하면 트라우마센터가 문을 연 5월부터 2개월 동안 280명이 등록하고 1374명의 누적인원이 방문했다고 해요. 하루 30명 이상이 방문하는 셈인데, 치유 프로그램의 이용자 97.7%가 만족한다고 합니다.
제주 4∙3은 무고한 도민들이 잔혹하게 학살되고 마을 공동체와 일상이 파괴된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독재정권과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발언조차 금지된 역사였죠.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4∙3의 피해와 억울함은 ‘말해서는 안되는’ 사실이었고, 기나긴 세월 동안 가슴 속에 묻어둬야만 했습니다. 끔찍했던 기억은 털어놓고 위로 받지 못했기에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한 분들은 이제라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 맺힌 한이 풀리는 것 같다고 말씀하세요.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스럽고 서러운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 한 사람의 가슴을 옥죄는 괴로움은 덜어지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약자에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죠.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얼마 전 보았던 연극 <문밖에서>가 떠오르더군요. <문 밖에서>는 미군부대가 있던 평택 기지촌에서 위안부로 일했던 이들의 현재를 보여줍니다. 홀로 살던 금옥이 죽은 지 며칠 후에야 발견되고 친구들은 무연고자인 금옥의 화장될 차례를 기다리게 되는데, 연극은 이들의 과거와 오늘을 교차하며 보여주죠. 이 연극의 특별한 점은 실제 위안부였던 할머니 세분(김숙자, 김경희, 권향자)이 배우로 열연을 펼친다는 점입니다. 원래 이 연극의 기원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사회복지회의 치유 프로그램이라고 해요.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할머니들과 함께 연극과 뮤지컬로 발전시켜오다가 올해 온전한 연극으로 무대에 올리게 된 거죠. 연출을 맡았던 이양구 연출가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작품을 당사자들을 위한 트라우마 치유 목적이 아닌 하나의 정식 연극으로 보아주길 요청합니다. 또한 연기를 한 할머니들 역시 치유받아야 하는 피해자가 아니라 엄연한 배우로 여겨줬으면 한다고 덧붙입니다.
이곳에는 참으로 애매한 경계가 놓여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것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그 폭력을 당한 이를 ‘피해자’로 말하는 자는 누구여야 할까요? 그리고 그 피해로 인해 ‘트라우마’가 남겨졌고, 그 트라우마를 ‘치유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어도 될까요? 물론 세상에는 다종다양한 폭력이 있고, 그 폭력의 작동은 무형의, 비가시적인 영역 안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관점에 따라 폭력과 피해가 달리 인정되기도 하고요. 일상에 만연한 오래된 관습 같은 폭력을 어떤 이들은 폭력으로, 피해로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막상 피해 당사자와 제삼자의 생각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어요. 실제 4∙3 피해자들 중에도 살다보니 고통받은 기억은 다 잊어버렸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심각한 피해에도 ‘이정도면 양호하지, 보상 같은거 바라지도 않아, 살아진것만 감사할 뿐’하며 손을 내젓는 분도 계시고요. <문밖에서>에서도 연출가가 민감한 상처라고 생각해 묻지 않았던 위안부 시절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스스럼없이 말하고, 연극의 보람을 물을 때 괴롭던 과거 기억이 견딜만해졌다는 소감 대신 ‘가만히 앉아있으면 남이 화장해주고’ ‘내 대사에 관객이 ‘와하~’하며 웃어줄 때’ 즐겁다는 할머니들의 말씀을 듣다보면 으레 그들을 '피해자'로 조심스러워하는 우리의 인식이 잘못되진 않았나 되묻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이들을 ‘피해자’라는 색안경을 쓰고 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물론 이들이 사회적으로 또한 국가적으로 소외 받아온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들을 배려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구조적인 개선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죠.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그들이 원하지 않는 과도한 피해와 트라우마의 딱지를 붙이고 일방적인 ‘피해자의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 또한 이들을 다른 방식으로 소외시키는 폭력일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시선’에 의해 재단되고 가공되기 보다 ‘그들 자신의 언어와 목소리’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 애매한 경계선에서 우리가 그들을 대할 때 더 신중하고 예민한 태도가 중요해집니다.
* 연극 <문밖에서> 상세페이지
*참고기사
좌용철 기자, <“70년 맺힌 恨 풀어요” 제주4.3트라우마센터 ‘성황’>, 제주의소리(2020.7.15)
남지은 기자, <연극 출연한 ‘미군 위안부’ 배우 3인…“냉대받고 살았지만, 의미 있는 삶이야”>, 한겨레(2020.8.3)
이숙정 기자, <[리뷰] 배우로 무대에 선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들이 전하는 묵직한 감동, 연극 ‘문밖에서’>, 민중의소리(2020.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