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고향만큼 낯선 곳도 없어라

제주가 고향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니예요

by Limi

고향이 제주도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을 보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주에 살았다는 것, 그리고 부모님은 여전히 제주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선망의 눈빛은 더 강해지죠. 그리곤 어김없이 이어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제주도에 맛있는 식당, 갈만한 관광지들 추천해주세요. 제주도 출신이니까 좋은 곳들 제일 잘 알잖아요!



그러나 실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저는 잘 모릅니다. 오히려 제주에서 올라와 10년 넘게 살고 있는 서울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고향인 제주는 올 때마다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해요. 제주를 오가는 횟수도 일년에 두세번 정도였고 (올해 상반기는 연구조사로 자주 오갔지만) 제주에 오더라도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요. 최근에 제주도를 여행한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거나 마치 관광객인냥 최신의 정보를 검색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는다면 저 또한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의 떠오르는 '핫플'들은 알지 못해요. 하나의 도시, 하나의 지역이 '살고 있는 거주민'이냐 '여행하는 방문객'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이 되는 것 같아요. 멀리 떨어져서 근근이 오갈 뿐인 저는 아무래도 제주의 거주민이 아닌 방문객입니다. 아무리 고향이라 할지라도.



KakaoTalk_20200818_220415482.jpg
KakaoTalk_20200818_220415838.jpg
KakaoTalk_20200818_220416707.jpg
KakaoTalk_20200818_220416109.jpg
KakaoTalk_20200818_220416509.jpg
KakaoTalk_20200818_220415673.jpg
익숙하고 정겨운 것들이지만 어쩔 수 없는 변화들 속에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 가령 줄서서 먹어야 하는 남춘식당이나 토스트 없는 빠빠라기빙수, 픽스커피의 신메뉴 같은 것.



그러고보면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고향'이라는 것에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과 끈끈한 애착관계가 있으리라 지레짐작하죠. 이방인인 사람에 비해 더 많은 기억,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리라 추측하고요. 그러나 모두에게 동일한 무게를 갖는 절대적인 고향이란 허상일뿐인지 모릅니다. 어떤 이들은 고향을 탈출하고 싶었던 좋지 않은 과거로 회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냈을 뿐인 감흥없는 공간으로 기억하기도 하니까 말이예요. 고향에 대한 고정관념은 모든 '기원'에 대해서 인간이 가지는 특유의 낭만과 연관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조건들, 출생과 소속에 대한 것들이요. 가족 공동체와 마을, 국가도 고향과 같은 낭만 속에서 의심없이 여겨지는 '관념'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주에 머무는 일주일남짓한 기간동안 저는 기억 속의 풍경이 낯설게 변해있는 모습을 참 많이도 목격했어요. 변화는 좋거나 나쁘다는 식의 일방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요. 그러나 한국의 어느 도시보다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그 열풍에 맞춰 급속도로 변화되고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제주이기에, 여전히 고향으로 제주를 생각하는 저는 황망한 마음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낯선 오늘에서 익숙하고 반가운 예전들을 발견하여 기뻐하고, 변화된 가운데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어떠한 고향의 얼굴이 저를 맞이할까요. 수십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모습보단 매번 신선한 모습으로 새로운 감흥을 일으키는 고향이 나을까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저는 오늘 서울에 다시 도착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