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타 치하루의 붉은 선
지난번 기억과 감정을 간직하게 되는 사물의 속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 있죠? 그 이야기의 연장선 상에서 며칠 전 보았던 전시를 소개하고 싶어요. 평창동의 가나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시오타 치하루의 <<Between Us>>전시예요. 시오타 치하루(Shiota Chiharu)는 오사카 출신의 일본 여성 작가로, 교토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 한 후 독일로 건너갑니다. 이후 독일이 그녀의 공부와 작품 활동의 근거지가 되고요. 한국에서는 지난해 말부산시립미술관에서 <<영혼의 떨림>>으로 거대한 규모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서울의 전시는 많이 축소된 형태입니다. (가나아트와 함께 진행하는 나인원에서의 전시는 8.2에 종료되었어요) 그녀의 대표적인 설치작품인 <불확실한 여정>이나 <부재 속의 존재>는 아쉽게도 볼 수 없습니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전시명이기도 한 <Between Us> 작품입니다. 시오타 치하루는 '실의 작가'로 불려요.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놓여 있는 의자들과 그 의자를 매개로 허공에서 촘촘하게 엮인 붉은 실에 압도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시오타 치하루는 실을 엮을 때면 무한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드로잉을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설명하더라고요. 평면의 화폭에 대한 회의를 일찍부터 느꼈던 그녀는(활동초기 시오타 치하루는 몸에 붉은 페인트를 끼얹어 자신의 몸을 화폭으로 사용한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어요) 일상적인 사물들을 활용해 작품활동을 해왔어요. 침대, 드레스, 오래된 창틀, 피아노 같은 것들 말이지요. 이때 시오타 치하루가 매료되었던 건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역사였다고 합니다. 사물의 낡고 닳은 부분들은 이전 사람들이 그것과 맺었던 관계를 보여주는 흔적이죠. 그녀는 그 사물들이 버려지면 이에 얽혀있는 수많은 기억들도 사라진다는 생각에 안타까워했던 것 같습니다.
전시에 대한 여러 설명에서 시오타 치하루의 붉은 선은 혈액이나 사람간의 인연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 독일에서 오래동안 이방인으로 이주의 삶을 산 내력이나, 두 번의 암투병으로 죽음과 생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고통의 시간이 작품의 추상성을 강화했다고 설명하죠. 이러한 설명은 틀리진 않겠지만 조금은 단순하게 들려집니다. 왜, 그런 느낌있잖아요. 무슨 의미인지는 대충 알겠는데 정확하게 실감하긴 어렵고. 들으면서 끄덕거릴 수는 있지만 막상 다른 이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 아마도 너무 추상적인 설명이라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녀의 작품이 버려지기 직전의 사물, 어떤 존재의 흔적을 강력하게 가지고 있는 사물들을 매개로 이루어졌다는 측면을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결국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은 언제나 '사이' 즉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의 기억들은 사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간과되기 쉽죠. 시오타 치하루의 실은 그 보이지 않는 영역을 보여주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복잡하게 얽혀있어 시작점도 교차점도 판별하기 어렵지만, '연결'되어 있는 것만은 확실한 우리의 존재들. 어쩌면 지독히 임의적이고 즉흥적인 '엮음'의 작업 자체는 그녀가 깨달은 관계의 속성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성찰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가나아트센터의 시오타 치하루 <Between Us>전은 8월 23일까지 열립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관람하시고 촘촘한 붉은 실이 전하는 소리없는 의미들을 몸소 체험하셨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