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의 우산>이 알려주는 마음
언제 비를 뿌리더라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흐린 하늘의 연속입니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래 마스크는 외출의 필수품이 됐는데, 이번 장마로 외출 필수품이 하나 더 늘었어요. 바로 우산이죠. 집을 나서면서 두번 체크를 해요. 하나, 입주변이 허전하지 않은지, 둘, 오른손이 비어있지 않은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제자리는 허전하기 마련이니까요.
사물은 그 자체의 기능과 가치가 있죠. 본질적으로 내재한 쓸모 말이예요. 그런데 간혹 그 쓸모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가치가 부여되기도 합니다. 사물과 연관된 추억이 특별할 때, 우리는 남다른 애정을 느끼며 애틋해지곤 해요. 심지어 사물의 수명이 다해 쓸모가 없어진 경우에도. 제 방에도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것들의 상자가 있어요. 거기에는 줄이 끊어진 목걸이나, 녹이 슨 연필깎이, 귀퉁이가 찢긴 엽서 같은 것들이 담겨있는데 저는 보통 그것들을 물건으로 부르기보다 '기억'이나 '추억'으로 부르구요.
그러나 자신만의 추억이 서리지 않은 사물인데도 특별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건 주로 그 사물의 주인에 대한 특별한 감정 때문일 거예요. 가끔 어떤 사물이 그 사물 주인의 일부처럼 느껴질 때 있지 않나요? 그건 내 물건들이 나의 시간과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의 물건 역시 주인에 대해서는 그럴 거라고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아니면 그냥 단순하게도 '그 사람의 것' = '그 사람' 으로 여겨지기도 하구요. dd의 우산처럼요.
황정은 작가는 섬세하고 예리한 문장을 쓰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무겁고 어두운 문제를 소외된 작은 자들의 생을 통해 드러내기 때문에 저는 작가의 작품들이 묵직하다고 느껴요. 그런 작가의 소설 중 제가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느꼈던 구절이 있어요. 주인공 d는 모임에서 만난 dd에게 우산을 빌리게 되고, 베란다 한쪽에 한동안 걸어놓았다가 돌려주게 돼요. 그러나 며칠 후 d는 이렇게 되새깁니다.
d는 매일 빨랫감 때문에 베란다로 들어섰고 이제 dd의 우산이 아닌, 그것이 걸려 있던 s자 모양의 고리를 매일 보았다. 참 이상하다고 d는 생각했다. 그 사물은 없어지고도 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없는 것이 너무 허전해서, 안 되겠다, 하고 웃으며 d는 dd를 다시 만나러 갔다.
-황정은 'd',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pp.18
우산의 빈자리를 의식하게 되는 것. 사라진 우산의 잔영이 생생하고 또 그만큼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 그건 그 우산의 주인인 dd에 대한 마음이죠. 어떤 존재에게도 대상에게도 쉬이 애정을 느껴본 적 없는 d는 자신의 마음을 눈치채고 '안 되겠다' 하고 웃으며 dd에게로 갑니다. dd의 우산인 매개체가 없었다면 이들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되지 못했겠고 d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힘들었겠죠.
인간은 언제 어디서고 무엇에든간에 흔적을 남길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 같아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다 간 자리도 아름답다는 유명한 말(주로 화장실칸에 쓰여있는!)도 있잖아요. 'dd의 우산'으로 빙 돌아 왔지만, 저는 사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좋은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고 싶어요. 마스크를 끼지 않은 입주변이 허전한 것처럼, 걸려있던 우산이 사라지면 불안한 것처럼. 나와 함께했고 기억하는 모두에게 나의 빈자리가 그리워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들 '안 되겠다' 웃으며 찾아줬음 좋겠네요.